특정한 정책에 대해 다수가 침묵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침묵의 나선 이론(the spiral of silence theory)'이 있다. 독일의 여성 커뮤니케이션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Noelle-Neumann)이 제시한 이론이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지배적인 여론과 일치하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매스미디어가 지배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전파시키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게 이론의 요지이다. 행동하는 소수는 사회의 주목을 받기 쉽고, 이들의 행동은 TV와 신문 등 주요 언론매체들을 통해 보도된다. 이때 일반 시민들은 행동하는 소수를 마치 지배적인 다수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비록 특정 사안에 대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더라도 조직화되지 않은 집단은 스스로를 소수로 인식하고 침묵하게 된다. 지배적인 여론에 소외될 것을 두려워하게 된 인원상 다수(여론상으로는 소수)는 의견 개진을 꺼리고 점점 위축된다. '침묵의 소용돌이(spiral of silence)'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균형 있는 보도가 필요하다. 언론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고 정확한 여론조사를 통해 민의(民意)를 보도해야 하며, 이를 통해 다수가 스스로 다수임을 인식할 수 있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침묵하던 다수가 행동에 나서면서 정책을 변화시킨 대표적인 사례가 '필수 기초의약품 약국 외 판매' 문제이다. 이는 감기약 등 일부 가정상비약을 약국이 아닌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도록 허용해 많은 국민에게 혜택을 주자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하지만 매우 강력한 이익집단인 약사단체는 조직화된 목소리로 국회의원들을 압박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소속된 많은 의원은 그런 압력에 굴복해 다수 국민의 요구와 이해에도 불구하고 필수 기초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필수 기초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선거에서 심판하겠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분출되자, 의원들이 태도를 바꿨다. 결국 '인원상 다수'가 '여론상 다수'가 되는 데 성공했고, 이 과정에서 언론이 큰 역할을 하면서 정책이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뒤바뀐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