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태블릿PC·스마트TV 등 인터넷 통신망(網)에 접속하는 새로운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유·무선 데이터 이용량(트래픽)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국내의 경우 3년 전 애플 아이폰이 처음 등장한 이후 현재 이동통신 데이터 이용량은 100배 이상 늘었다.

그러자 폭증하는 데이터를 실어나를 '도로(통신망)'에 문제가 생겼다. 유선 초고속인터넷과 무선 이동통신 모두 데이터가 적정 한도를 넘어서면 전송속도가 느려진다. 심한 경우 불통(不通)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출퇴근 시간에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면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데이터 폭증 현상의 원인과 해결책을 둘러싸고 통신사와 인터넷포털·스마트TV 제조사 등이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KT가 10~14일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한 것도 이런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매년 2배씩 늘어나는 데이터 통신량

데이터 폭증 현상을 해결하려면 원천적으로 데이터 사용량을 줄이거나 통신망을 확충해야 한다. 신규 서비스가 계속 생겨나는 현실에서 데이터를 줄이기는 어렵다.

따라서 통신망을 확충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막대한 통신망 구축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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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통신요금을 받는 KT·SK텔레콤·LG유플러스 같은 통신사가 부담해왔다. 하지만 통신망 구축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반면 통신사의 이익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통신사들은 돈을 많이 버는 전자회사와 인터넷 업체에 투자비용 분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KT 이석채 회장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통신망을 이용하는 콘텐츠 제공업체에게도 돈을 받아야 공존공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일본 소프트뱅크손정의 회장은 "몇 %의 소수 이용자가 전체 통신망의 대부분을 사용하는 현재 상황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유럽의 통신업체들도 소비자나 다른 인터넷망 이용 기업에 돈을 받으려는 분위기다.

통신장비업체 시스코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237페타바이트(PB)였던 이동통신 트래픽이 올해는 1163PB로 5배 정도 폭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1기가바이트 용량의 영화 11억편을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2015년엔 이 수치가 올해보다 5배 이상 증가한다.

해외 통신업체들은 통신요금 체계를 변경해 사용량을 제한하고 있다. 작년 미국버라이즌AT&T는 스마트폰의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폐지했다. 데이터 사용량 한도를 정해놓고 그 이상 쓰려면 추가 요금을 내라는 것이다. 일본 소프트뱅크도 같은 방안을 검토 중이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4세대 이동통신(4G LTE) 서비스에서 무제한 요금제를 없앴다. 은근슬쩍 소비자의 부담을 늘린 것이다.

유선 인터넷망도 마찬가지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32개 국가 중 25개국은 유선 인터넷에서 종량제(從量制)를 도입했다. 기본요금만큼 정해진 데이터양을 제공하고, 이를 넘으면 사용량을 제한하거나 추가 요금을 부가하는 방식이다.

지난 10일 서울 염창동의 한 가전제품 매장에서 소비자가 삼성전자의 스마트TV로 인터넷 연결을 시도하지만, 접속이 안 되고 있다. KT는 10일부터 4일간 스마트TV의 트래픽 폭증을 이유로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을 제한했다.

국내 통신업체도 종량제를 추진하다 소비자 반발에 부딪혀 주춤한 상태다. 소비자들은 "이동통신사들이 인터넷을 마음껏 쓰라며 스마트폰과 초고속인터넷을 보급해놓고 이제 와서 데이터 한도를 제한하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통신사들은 "데이터 다량 이용자(일명 헤비유저) 탓에 대부분의 소비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설득하지만 잘 먹히지 않고 있다.

통신망 투자비 누가 내느냐가 쟁점

통신업체들의 타깃은 콘텐츠 업체로 바뀌고 있다. 이미 수만원씩 통신 요금을 내는 소비자의 지갑을 더 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연간 수천억원씩 이익을 내는 NHN과 같은 인터넷 포털이나 새롭게 스마트TV 서비스에 나서는 삼성전자·LG전자 같은 대기업이 대상이다.

KT가 최근 삼성전자의 스마트TV가 자사(自社)의 인터넷 통신망 속도를 떨어뜨린다며 인터넷 접속을 제한했다가 다시 복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마트TV는 방송 시청은 물론이고, 컴퓨터처럼 인터넷 접속 기능을 갖춰 온라인으로 영화·드라마를 보고 인터넷 검색도 할 수 있는 TV를 말한다.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서비스가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이상, 삼성전자가 사용료를 내라는 것이다.

표현명 KT 사장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인터넷망 지원이 없다면 스마트TV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PC나 다른 IT기기는 놔두고 스마트TV만 문제로 삼는 것은 곤란하다"고 반발했다. 양측이 일단 통신망을 복구하고 사용료 협상을 하기로 했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제조사가 통신망 구축 비용을 낸 전례는 있다. 5~6년 전 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 제조사들은 지상파DMB 사업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80여억원을 냈다. 이 돈은 수도권 지역의 지상파DMB망 구축에 쓰였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지상파DMB는 소비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였다"며 "통신사는 초고속인터넷 이용료를 받으면서 또 돈을 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구글·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업체들도 반발한다. 콘텐츠 업체에 돈을 물리면 이용자에게 편리한 서비스나 카카오톡과 같은 신생 벤처가 생겨나기 힘들다는 논리다.

인터넷 업체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동통신사들은 휴대폰에서 음악을 하나 팔면 매출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횡포를 부렸다"며 "이제 사업이 잘 안 되니까 통신망 구축 비용을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