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지난 5일 서울 명동의 패션·의류 쇼핑몰 '밀리오레'. 지하철 4호선 명동역 바로 앞에 있는 이곳은 2000년 문을 연 이후 서울 도심의 대표 쇼핑센터라는 명성을 지켜왔다. 이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상 1~2층에는 점포마다 옷을 고르는 인파로 북적였다. 그러나 영업이 한창인 1~2층과 달리 3층부터 17층 사이에는 시멘트 기둥만 서 있고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곳이 많았다. 이 빌딩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올해 안에 700여실 규모 대형 호텔로 탈바꿈하는 '대변신'이 진행 중이다.

'밀리오레'에서 200m 정도 떨어진 22층짜리 '엠플라자'도 비슷한 상황이다. 2008년 문을 연 이 쇼핑몰은 포에버21, 자라 등 유명 패션 브랜드가 영업 중이지만, 지상 7~22층 부분은 315실 규모의 호텔로 바꾸는 계획이 추진 중이다.

건물 일부만 비즈니스호텔로 변신

서울 도심 건축물이 중저가형 비즈니스호텔로 속속 변신하고 있다. 지난 3~4년간 매년 약 100만명씩 급증한 외국인 관광객 수요를 노린 변신이다. 최근에는 신규 호텔이 들어설 만한 공간을 도심에서 찾기 어려워지자 오래된 쇼핑몰과 극장, 심지어 주차장에 이르기까지 기존 빌딩과 시설물을 리모델링하거나 허물고 숙박 시설로 짓는 일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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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의 부동산 개발 자회사 KT에스테이트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영동전화국 옆 주차장 터에 300실 규모 호텔을 지을 계획이다. 올해 안에 착공하려고 현재 시공사를 고르고 있다.

최신식 복합 영화관에 밀려난 오래된 영화관도 현대식 호텔로 탈바꿈한다. 올 상반기 철거 예정인 서대문구 미근동의 '청춘극장'도 현재 비즈니스호텔을 짓기 위한 사업이 진행 중이며, 호텔신라에 운영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건물을 호텔로 바꾸는 데는 오피스 빌딩 소유주가 가장 적극적이다. 건물 구조상 엘리베이터와 기둥을 그대로 둔 채 각 층 사무실 벽만 허물고 객실로 꾸미면 호텔로 손색없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세종호텔 옆 청방빌딩과 중구 을지로 와이즈빌딩이 그런 예다. 두 빌딩은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각각 136실, 120실 규모 호텔로 바뀌었다.

부동산 투자 정보 업체 '저스트알' 김우희 대표는 "호텔 투자자의 가장 큰 고민은 도심에 개발할 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중국·일본인 관광객도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비즈니스호텔을 주로 찾고 있어서 건물 개·보수를 통한 호텔 건축이 더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호텔 매년 14~15개 공급에도 여전히 부족

도심 호텔 개발붐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7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중구·마포구·강남구 등 도심을 중심으로 40곳에서 약 6400실 규모의 관광호텔이 건축 공사를 벌이고 있다. 올 연말까지 24개 호텔(3557실)이 운영에 들어가는 데 이어, 2013년과 2014년에 새 호텔이 각각 14~15개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 곳곳에 호텔 건립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외국인 관광객에 비해 숙박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00년에 532만명이 한국을 찾았던 외국인 관광객 수는 2010년 879만명에 이어 지난해 979만명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 김진수 관광환경개선팀장은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18% 정도가 모텔·여관에 투숙할 정도로 비즈니스호텔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고 말했다.

호텔 개발에 참여하는 투자자로서는 도심에 오피스나 오피스텔을 짓는 것보다 호텔 건립이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적극적이라는 평가다. 최근 도심 오피스 빌딩의 수익률이 연 4~5% 정도인 데 비해 호텔은 연 7% 이상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투자 자문회사 '알투코리아' 김태호 이사는 "오피스 시장은 최근 2~3년간 공급 증가와 경기 부진으로 공실률이 높아지고 임대 수익도 정체돼 있지만 호텔은 평일에도 평균 90%가 넘는 객실 점유율을 보일 정도로 호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도 지난해부터 기존 건축물이 관광호텔로 전환할 경우 용적률을 완화해주거나 재산세 감면 기간을 연장해 주는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후죽순 들어서는 호텔이 자칫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지역별 수요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김우희 대표는 "최근 호텔 건립을 추진하다 중도에 포기하는 투자자도 상당히 많다"며 "일반 오피스보다 투자비가 더 많이 들어가고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온도차가 큰 관광산업의 특성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