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주류 도매업을 하는 유모(40)씨는 5년 전 4500만원을 주고 샀던 N골프컨트리클럽 회원권을 지난해 11월에 반납해 돈을 돌려받은 뒤, 3700만원에 같은 골프장 회원권을 다시 샀다. 그는 "회원권 시세가 분양가보다 턱없이 많이 떨어져 있길래 골프장에 회원권을 반납하고, 시중에서 다시 싼값에 샀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 등으로 골프장 회원권 가격이 급락세를 보이면서 유씨처럼 만기가 돌아온 회원권을 팔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골프장 입장에서 회원권은 일종의 부채다. 회원금 입회금은 골프장이 회원권을 처음 분양할 때 회원들이 보증금 형태로 예치하는 돈이다. 부동산으로 보면 전세보증금 같은 개념이다. 거치기간으로 정한 일정 시기가 지나고, 회원들이 입회금 반환을 원하면 골프장은 회원들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 올해 골프장 회원권 입회금 만기 도래액은 총 3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세보증금처럼 회원들이 만기 연장을 원할 수도 있지만, 입회금을 환매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골프장 회원권 환매를 희망하는 회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금융권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한 시중은행 본점은 각 지점에 회원제 골프장에는 신규 대출을 해 주지 말고, 기존 대출도 만기를 연장해 주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회원권 시장이 활황일 때 회원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 준 은행들이 회원권 시세가 떨어지자 대출금 회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골프장 회원권 평균가격(117개 기준)은 5년 전보다 53% 떨어졌다. 명문 골프장으로 꼽히는 경기 가평베네스트와 남촌의 회원권 값은 7억원대로 2007년(17억~19억원)의 반토막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13억원이 넘던 렉스필드 회원권은 5억원대로 주저앉았다.

2008년까지만 해도 골프장 회원권은 사 놓기만 하면 가격이 오르는 '유망 투자상품'이었는데, 요즘은 투자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골프 붐을 이끌던 베이비붐 세대(1955~1965년생)의 은퇴가 시작됐지만 그 뒤를 받쳐줄 세대의 소비 여력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규제 완화로 골프장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올해 33개의 골프장이 새로 문을 열 예정이고, 현재 인허가를 추진하고 있는 골프장이 80여개에 달한다.

이에 따라, 수도권 근교에 있거나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일부 골프장을 제외한 다른 회원제 골프장이 올해 '환매 대란'을 겪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금융권에선 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중견 건설사들이 운영하는 골프장과 지방에 있는 골프장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정이 어려운 골프장들은 회원권을 환매해 주지 않는 대신 회원권을 한 장 더 끼워 발행해 주는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있다"며 "뿌려진 회원권 숫자가 많을수록 좋은 골프장이라는 평판을 잃게 돼 골프장 입장에선 악순환일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골프업계 관계자는 "회원권을 투자 목적이 아닌 레저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만큼 환매 대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