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기다리는 것도 지쳤어요. 집값만 자꾸 떨어지고…."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일대 한남뉴타운 5구역.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길 양쪽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낡은 단독주택과 빌라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곳은 2003년 11월 서울시 2차 뉴타운으로 지정된 이후 개발 기대감으로 한껏 달아올랐다. 한강 조망이 가능하고 교통여건도 좋아 최고의 뉴타운으로 손꼽히며 재개발 지분(딱지) 시세가 3.3㎡(1평)당 최고 3000만원을 웃돌기도 했다.

하지만 5개 구역으로 나눠 개발되는 한남뉴타운은 8년이 지난 현재 단 한 곳도 착공은커녕 조합설립도 못 하고 있다. 한남동 T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사업이 계속 늦어지면서 지분 시세가 3.3㎡당 2000만원대 이하로 뚝 떨어졌다"면서 "그나마 매수자가 없어 몇 달 동안 계약서를 써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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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의 강남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2002년 처음 시작된 뉴타운 사업이 1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경기 침체, 주민 갈등 등으로 대다수 지역의 사업추진이 사실상 중단됐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뉴타운은 태생부터 잘못됐다"며 전면 재검토를 선언해 사업의 존폐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다.

뉴타운 4곳 중 3곳은 사업착수 못 해

뉴타운은 2002년 은평·길음·왕십리 등 3곳이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이후 2003년 2차로 12곳, 2005년 3차로 11곳 등 총 26곳이 지정됐다. 이들 뉴타운은 총 245개 구역으로 나뉘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사업이 끝난 곳은 전체의 10%도 안 되는 19곳에 불과하다. 착공(13곳), 관리처분인가(13곳), 사업시행인가(19곳) 등 그나마 사업이 진척된 지역도 45곳뿐이다. 전체의 4분의 3이 넘는 181곳은 사실상 사업이 겉돌고 있다. 이 가운데 40%에 달하는 71곳은 추진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시범뉴타운 중에서는 은평뉴타운만이 2010년 6월 3개 구역이 모두 준공돼 아파트 1만6000여 가구가 입주했다. 길음뉴타운은 12곳 중에서 8곳의 사업이 끝났다. 왕십리 뉴타운은 지구 지정 10년 만인 작년 말에야 처음으로 2구역에서 아파트 분양을 실시할 정도로 진척이 더디다.

전국주거대책연합 회원들이 18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에서 뉴타운 사업 결사반대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02년 첫 시작된 뉴타운 사업은 최근 경기 침체 등으로 곳곳에서 사업이 중단된 상황이다.

2·3차 뉴타운은 사업이 제대로 진행된 곳이 드물다. 2차 뉴타운 중 용산구 한남지구·동작구 노량진지구·강동구 천호지구·영등포구 영등포지구 등은 아직까지 착공한 사업장이 한 곳도 없다. 3차 뉴타운도 서대문 북아현지구와 동작구 흑석지구의 일부 사업장만 준공하거나 착공했을 뿐이다.

사업이 지지부진하고 주택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뉴타운 지역의 투자 심리도 얼어붙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뉴타운과 재개발 지역의 지분 시세는 올 들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동대문구 이문 1·4지구는 최근 한 달 새 3.3㎡당 50만~100만원쯤 지분 값이 내렸다. 관악구 봉천동, 성북구 정릉·돈암동 일대 재개발 구역도 3.3㎡당 200만~500만원씩 가격이 하락했다. 부동산114 윤지해 연구원은 "값싼 급매물이 쌓여가고 있지만 매수세가 붙지 않는다"면서 "특별한 호재가 없는 한 추가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로 사업성 떨어져"

뉴타운 사업이 위기를 맞게 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지구 지정의 남발을 우선적으로 지적한다. 서울의 경우 뉴타운으로 지정된 면적이 2591만㎡(765만평)로 서울 전체면적의 4%를 넘는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서 강남·서초·노원·도봉·중구 등 5개구를 제외하고 모두 뉴타운이 1곳 이상 지정돼 있다. 이웰에셋 이영진 부사장은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지키지도 못할 뉴타운 개발공약을 마구 내걸었던 부작용이 지금 와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기꾼을 막지 못한 것도 뉴타운 사업 실패 요인이다. 대다수 뉴타운의 경우 투기세력들이 아파트 분양권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큰 땅을 잘게 나누는 이른바 '지분쪼개기'가 성행했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뉴타운이나 재개발 사업은 지분쪼개기로 조합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일반분양분이 줄고 조합원 부담금은 증가해 사업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주택경기 침체도 뉴타운 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경기 침체로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추가 부담금을 떠안게 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사업이 중단되고 있는 것이다. 서대문구 A뉴타운의 경우 중대형 아파트 100여 가구가 2년째 미분양으로 남게 되자 시공사들이 조합원 1인당 3500만원씩 총 700억원의 추가부담금을 내라고 요구해 갈등을 빚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뉴타운 사업이 기로에 놓일 것으로 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뉴타운 사업 전면 재검토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의 기본 원칙은 "될 곳은 지원하고, 안 될 곳은 빨리 사업을 접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로드맵을 마련해 구조조정에 나서야 추가적인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