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목표가 뭐니?"

"게임 시간을 줄이는 거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뭘 할 거니?"

"밤 11시엔 무조건 잘 생각입니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이용태(79) 삼보컴퓨터 전(前) 회장의 자택. 이 회장이 새해 인사 온 손자·손녀 5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손주들이 정한 이날의 이야기 주제는 '인생 목표를 세우자'였다. 가장 어린 손자인 고3 성빈(19)군은 "게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이 대학교 다닐 때 유학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수학 강사를 했던 이야기를 들려 줬다. 세계에서 가장 준비를 많이 한 수학 강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각종 참고서를 오려 모으고,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했다는 내용이다.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이 지난 1일 손주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통한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돈보다는 ‘세상 사는 지혜’를 남겨주고 싶다”고 말했다.

1980년대 PC(개인컴퓨터) 대중화를 주도한 그는 지난 2005년 은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찾아온 손자에게 말을 걸었는데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몇 학년이니?" "고3이요." "수영 잘한다며?" "학교 선수예요." 이야기들은 이렇게 단답형으로 끝났다.

그는 그때부터 손자·손녀들을 한 달에 한 번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통해 한 달에 한 가지씩 좋은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지난 5년간 손주들의 변화가 놀라웠다고 했다. "윈윈 하는 법을 알았고, 솔선수범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자녀에게 물려줄 가장 중요한 자산은 돈이 아니라 '가치'"라고 말했다. "세상 사는 법을 모르면, 공부도 돈도 간판도 다 소용없어요. 서울대·하버드대 나온 바보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잘나가던 회사를 아들에게 맡긴 지 몇 년 만에 부도가 나면서 인생무상을 경험한 것도 그가 '가치를 남기는 일'에 천착하게 된 이유다.

그는 요즘 학부모나 교사들에게 이야기를 통한 인성 교육법에 대해 강의하러 전국을 다닌다. 2005년부터 14만명이 그의 강의를 들었다고 했다. "돈은 먹고살 정도만 있으면 되고, 그 이상은 부담이지 축복은 아닙니다. 인성 교육이야말로 위대한 유산입니다."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이 전 회장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 지난달 본지가 삼성생명과 은퇴를 앞둔 전국 40~50대 남녀 500명에게 "자녀에게 남길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삶에 대한 가치관'(81.2%), '추억'(5.3%)이라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돈에 대한 철학'(4.9%)이나 '돈'(2.2%)이라는 대답은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