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잠실점에 문을 연 가전제품 전문 매장 '디지털 파크'. 영업면적 3900㎡(1210평)에 9000여개의 상품을 갖춘 이곳은 단일 가전 매장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동시에 소비자가 지갑을 열기 전에 제품을 철저히 '검증'할 수 있는 체험형 매장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직접 찍어보거나 프로 게이머들이 사용하는 장비로 직접 게임을 해보는 것은 물론 오디오의 음질을 정확히 비교할 수 있게 청음(聽音)부스도 설치돼 있다. 롯데마트 측은 "대부분 고가(高價)인 가전제품은 기능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사는 품목이어서 기존 매장보다 3.6배 넓어진 공간을 고객 체험에 투자했다"며 "그 결과 일반 가전매장보다 매출이 7배 이상 급증했다"고 밝혔다.

서울 잠실에 문을 연 롯데마트의 가전제품 전문 매장 ‘디지털 파크’를 찾은 소비자들이 유리벽이 설치된 부스에서 헤드폰을 끼고 오디오 음질을 비교하고 있다.

기업 마케팅의 '최전방', 오프라인 매장이 '공간 파괴'에 나서고 있다. 기존 매장은 역세권이나 상가 밀집 지역에 적당한 크기의 점포를 임대해 제품들을 진열하고 고객이 찾아오길 기다리던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간개념을 뛰어넘고 있다.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한 온라인 매장을 따라잡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 고객이 다양한 제품을 직접 체험하고 선택할 수 있는 초대형 매장을 운영하거나 소비자들이 있는 곳으로 재빠르게 찾아가기 위해 아예 몸집을 크게 줄인 초소형 매장이 나오고 있다.

고객 체험장으로 꾸며진 초대형 매장

LG패션의 서울 구로구 소재 '인터스포츠' 매장. 겉모습은 일반 스포츠 판매점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문 열고 들어가면 다들 깜짝 놀란다. 일단 매장 규모만 4958㎡(1500평)에 이르는 초대형이다. 2층으로 구성된 매장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놀랍다. '베이스볼 존'에서는 피칭머신이 시속 160㎞짜리 강속구를 비롯해 22가지 구질의 야구공을 뿌려준다. LG패션은 "테니스·배드민턴·스쿼시 등 25개 구역에서 20여만 점의 제품을 직접 경험하고 고를 수 있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부산 해운대구에 문을 연 한샘의 센텀시티점 역시 매장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지하 1층~지상 4층으로 이뤄진 전시장에는 단순히 가구, 생활용품을 전시하는 것뿐 아니라 고객이 실내장식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얻을 수 있도록 거실·침실·서재 등 용도에 따라 12~15㎡(4~5평) 남짓한 방을 100개나 꾸며 놓았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 K2의‘클라이밍&휘트니스센터’에서 전문 신발·장갑 등을 착용한 고객들이 암벽타기를 하고 있다.

매장 내 체험공간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전문가들이 찾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아웃도어 브랜드 K2의 '클라이밍&휘트니스 센터'는 지상 7층 건물 안에 290㎡ 규모의 전문 클라이밍장(경사진 면을 오르는 것)과 310㎡(약 94평)의 볼더링장(암벽타기)을 갖추고 있다. 특히 클라이밍장은 수직 높이 12m, 평균 등반 각도 110~150도로 국제대회도 개최가 가능할 정도다.

컨설팅업체 올리버와이만의 신우석 팀장은 "미국 뉴욕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애플스토어 등 해외 시장에서는 체험형 매장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며 "당장 물건을 사지 않는 잠재 고객이더라도 제품을 보고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친숙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할인마트에 미니 은행지점

고객이 필요로 하는 곳에 찾아가려면 매장들도 다이어트해야 한다. 이를 발 빠르게 실행에 옮긴 곳은 금융업체들이다.

대형 할인마트인 홈플러스 일부 매장에는 하나은행 지점이 들어와 있다. 은행 직원 7명 정도가 근무하는 소형 점포이지만 업무는 입출금·펀드 판매·공과금 수납 등 다른 지점과 같다. 하나은행 측은 "운영시간이 마트 영업시간(오전 11시~오후 8시)과 같아 고객이 쇼핑과 금융업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며 "휴일에도 영업하기 때문에 고객 수가 일반 영업점보다 1.5배 정도 더 많다"고 밝혔다.

기업은행은 공중전화 부스를 개조해 입출금 업무를 처리해주는 '길거리 점포'를 운영 중이다. 작년 9월 서울역에 1호점을 개설한 이후 현재 50여개 점포가 운영 중이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는 대개 지점 안에 설치돼 있어 고객이 돈을 찾거나 송금하려면 가까운 지점까지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무인점포를 전국 1000곳에 설치, 고객의 이런 번거로움을 없앤다는 전략이다.

신우석 팀장은 "제품 이용과 트렌드 변화 주기가 짧아질수록 제품의 홍보시간을 줄이기 위해 고객에게 찾아가는 마케팅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