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전시장을 양분하는 삼성전자·LG전자가 겉으로는 경쟁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가격을 담합해온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TV·냉장고·노트북PC 같은 주요 제품을 미국 등 해외보다 한국에서 20%가량 비싸게 판매하는 현상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담합해 TV·노트북 비싸게 팔아

13일 가격정보 사이트 다나와닷컴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55인치 3D(입체영상) TV는 판매가가 291만원이다. 이 제품은 미국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에서는 237만원에 팔린다. 크기나 성능이 같은 제품이 한국에서 50만원 이상 비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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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의 55인치 3D TV는 한국 판매가격이 미국보다 18% 비싸다. 두 회사의 냉장고·스마트폰·노트북PC와 같은 다른 전자제품도 한국 판매가가 미국보다 10~2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8월 소비자시민모임 조사에서도 삼성·LG의 LED(발광다이오드) TV가 미국·일본·중국 등 18개국 가운데 인도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제일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삼성과 LG는 최근 2년간 3차례나 가격담합 행위가 적발됐다. 양사가 동시에 TV·세탁기·노트북 가격을 인상하거나 비용을 줄이려고 판촉행사를 일제히 축소하기도 했다.

필요 없는 기능 넣어 가격 올리기도

이들 업체가 제품 가격을 올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대표적인 방법이 쓸데없이 많은 기능을 집어넣는 것.

직장인 박모(35)씨는 작년 6월 삼성의 55인치 LED TV를 320만원에 샀다. 이 TV에는 인터넷 접속, 스마트폰 연결 등 첨단 기능이 잔뜩 들어있지만 박씨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기능을 쓴 적이 없다. 박씨는 "복잡한 기능은 필요없고 화면만 잘 나오면 되는데 시중에 그런 제품이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LG전자가 작년부터 한국에서 팔리는 55인치 이상 TV에는 모두 이런 기능을 기본으로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중저가 제품을 외국에만 팔기도 한다. LG전자는 현재 미국에서 기능을 단순화한 55인치 LED TV를 122만원에 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시판하지 않는다.

이들 업체는 "한국 소비자는 첨단 기능을 선호하기 때문에 프리미엄 제품이 아니면 잘 안 팔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이마트가 작년 10월 49만9000원짜리 저가(低價) TV를 내놓자 이틀 만에 준비물량 5000대가 매진될 정도로 인기였다. 싸고 괜찮은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막강한 유통망을 바탕으로 가격을 조절하기도 한다. 삼성과 LG는 매출 1조원대의 유통 자회사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는 디지털프라자 600곳, LG전자는 베스트샵 520곳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한다.

대형 유통업체가 가격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게 자사 매장을 통해 견제하는 것이다. 유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연간 3조원 이상의 전자제품을 파는 하이마트조차 삼성·LG의 눈치를 볼 정도"라고 말했다.

경쟁사가 별로 없는 것도 삼성·LG가 제품 가격을 비싸게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다. 예를 들어 평판TV의 경우 두 회사가 국내 시장의 99.3%를 장악하고 있다.

삼성과 LG 측은 "국내 판매가에는 AS와 배달·설치비 등이 포함돼 있어 상대적으로 비싼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비자 단체들은 "부대비용을 감안해도 한국이 훨씬 비싸다"며 "두 회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도 아직까지 국내 소비자에게 큰 부담을 주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