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역사의 대부분에서 낮에만 활동하고 해가 지면 활동을 접었다. 문명의 발달로 촛불이나 램프를 사용했지만 빛이 약한 데다, 오래 쓸 수도 없었다.

인류의 활동시간을 획기적으로 확장한 것은 1879년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하면서부터다. 밤에도 태양이 있는 낮처럼 생활할 수 있었다.그래서 독일의 역사학자 에밀 루드비히(Ludwig)는 백열전구를 "프로메테우스 이후 인류가 발견한 두 번째 불"이라고 말했다. 이런 백열전구가 탄생 133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연합(EU)·미국·호주·중국·일본 등 전 세계 국가들이 내년부터 조명용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백열전구를 퇴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에너지효율 낮은 백열전구, 역사의 뒤안길로

우리나라에서는 1887년 3월 6일 경복궁 내 건청궁 뜰 앞에서 처음으로 에디슨의 회사가 만든 백열전구가 불을 밝혔다. 한동안 백열전구는 극소수만 쓰는 사치품이었다. 1945년만 해도 백열전구 한 개 값은 방직공작 여공 월급(20원)보다 비싼 37원이었다.

에디슨이 1879년 만든 최초의 탄소 필라멘트 백열전구(사진 오른쪽).

하지만 이제는 개당 600~700원 하는 품질 나쁜 싸구려 조명으로 전락해 퇴출 위기에 처했다. 백열전구는 모닥불이 타면서 빛을 내듯이 전구 속의 필라멘트에 전기를 흘려보내 열과 함께 빛이 나는 원리다. 이 때문에 백열등은 전력 사용량 중 5%만 빛을 내고, 95%는 열에너지로 발산돼 에너지효율이 매우 낮다.

유럽연합은 내년 9월부터 백열전구 판매를 금지한다. 미국과 중국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백열전구 판매를 막는다. 우리나라는 내년 70와트(W)급 이상 백열전구를 퇴출하고, 2014년이면 백열전구 대부분을 판매 금지한다. 호주는 이미 올해부터 모든 백열전구를 시장에서 퇴출했다.

판매량은 이미 급감하는 추세다. 에너지관리공단 집계에 따르면 2000년 연간 5630만개가 팔리던 백열전구는 작년엔 240만개에 그쳤다. 판매량이 25분의 1로 급감한 것이다. 국내 백열전구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다른 외국계 조명 회사인 GE라이팅코리아·오스람코리아·필립스전자는 "더 이상 백열전구를 한국으로 들여와 팔지 않겠다"며 "재고물량을 다 팔면 판매를 완전히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빛을 내는 반도체(LED) 시대로 진화

백열전구는 효율이 높은 신제품에 밀려나고 있다. 조명 시장의 주도권은 1990년대 이후 형광등으로 넘어갔고 최근엔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이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LED 조명시장은 올해 11조원 규모로 커졌다. 내년에 14조원으로 늘어나고, 2015년엔 28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LED는 반도체에 전기를 흘리면 빛이 나는 원리다. 이 때문에 에너지가 열로 손실되지 않는다. 30와트(W)짜리 백열전구가 내는 빛은 4.7W급 LED(발광다이오드) 조명과 동일하다. 에너지 84%가 절감되는 셈이다. 수명도 백열전구는 1000시간에 불과하지만 LED는 3만~5만시간으로 반영구적이다.

전구 제조업체들도 주력 상품을 교체하고 있다. 과거 '번개표 전구'로 유명했던 금호전기 관계자는 "우리는 이제 백열전구 제조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금호전기는 고효율 첨단 조명인 LED로 주력 사업을 옮기고 있다. 국내 삼성LED·LG이노텍, 일본 니치아·도요타고세이·파나소닉, 유럽의 필립스·오스람, 미국 GE·크리 등이 주요 LED 업체다. 유럽의 오스람은 경기도 안산에 LED 생산 공장을 건립, 가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