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도 서울대 교수(경영학)

혁신 하면 보통 기술 혁신을 쉽게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은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써가며 코닥 필름, 제록스 복사기, 소니 워크맨, 애플 아이폰과 같이 새로운 산업의 지평을 열었던 제품을 출시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최근 선진 기업은 천문학적인 연구개발 투자 비용이 드는 기술 혁신의 대안으로 비즈니스 모델 혁신(business model innovation)에 주목한다. 기업 및 국가 간 연구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예전과 같은 투자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제품 수명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소비자 환경의 변화 역시 기술 혁신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사업하는 방법을 바꿔서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혁신이다. 예컨대 패스트패션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자라(Zara)는 신상품 디자인에서 완제품 출시까지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변덕스러운 소비자의 니즈(수요)를 충족한다. 소매점에서 팔던 개인용 컴퓨터를 전화를 통해 처음 팔기 시작한 델컴퓨터 역시 비즈니스 모델 혁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술 혁신을 통해 성공했다고 알려진 기업 중에도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핵심 경쟁력이 제품보다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 경영학자들이 애플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제품이 아니라 '앱스토어'라는 모바일 콘텐츠 시장을 새롭게 창조한 점일 것이다. 애플은 앱스토어를 통해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고 자사 제품의 가치를 끊임없이 높일 수 있는 응용 프로그램 개발자 수십만명을 확보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표적시장·제품·사업방식 확 바꾸는 것

전략 혁신 분야 전문가인 마르키데스(Markides) 교수는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전략을 세우려면 표적 고객(Who), 제품 및 서비스(What), 사업 방식(How)의 세 가지 요소를 바꾸라고 제안한다.

첫째, 표적 시장을 바꿈으로써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할 수 있다.

1885년 코닥이 사진 필름을 개발하기 전까지 사진 촬영은 전문 사진사들만의 업무였다. 커다란 사진기는 작동 방법도 복잡했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무거운 유리 인화판을 바꿔야 했기 때문에 사진 촬영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이에 착안한 코닥은 표적 시장을 사진 전문가에서 일반 대중으로 바꿨다. 일반인이 간편하게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사진 필름을 개발해 유리 인화판을 대체했고, '브라우니'란 카메라를 개발해 25달러 하던 사진기 가격을 1달러로 낮췄다. 사진 촬영의 표적 시장을 일반인으로 바꾸면서 시작된 비즈니스 모델 혁신 결과 코닥은 1970년대 말까지 세계 사진 관련 시장을 거의 독점할 수 있었다.

둘째, 과거와 다른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함으로써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할 수 있다.

힐티(Hilti)는 원래 건설업자에게 고성능 전동 공구를 팔던 독일 회사였다. 그런데 최근 건설업자로부터 월 수수료를 받고 필요한 공구를 임대해 주거나 수리해 주는 사업을 시작해 큰 성과를 내고 있다. 건설업자가 공구를 구매하는 이유는 공구 소유 자체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공사를 적시에 마무리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셋째 방법은 생산 프로세스, 배달 방식, 판매 채널 등 사업 운영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전화로 개인용 컴퓨터를 처음 판매한 델컴퓨터나 인터넷 채널을 통해 서적을 처음 판매하기 시작한 아마존과 같은 회사가 이 부류에 속한다.

한국 기업, 이젠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눈 돌릴 때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출발점은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출발점은 다르더라도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일단 시작되면 표적 고객, 판매 제품 및 서비스, 사업 방식의 세 가지 요소가 모두 바뀌게 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복사기를 최초로 개발한 제록스는 대형 복사기를 기업에 임대해 주고, 복사기 사용량에 따른 수수료를 매달 받고 있었다. 후발 업체 캐논은 복사기 시장에 진입하면서 제록스와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표적 시장을 개인 고객으로 설정했다. 제록스의 기업용 대형 복사기와는 달리 캐논의 개인용 복사기는 저렴하고 작은 대신 복사 속도는 느린 것이었다. 또한 저렴한 개인용 복사기였기 때문에 캐논은 복사기를 전자제품 전문점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즉 캐논은 표적 시장을 기업에서 개인으로, 제품을 대형 복사기 임대에서 소형 복사기 판매로, 판매 채널을 영업사원에서 전자제품 전문점으로 바꿔 복사기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한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유능한 엔지니어와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왔다. 하지만 치열한 연구개발 투자 경쟁, 소비자의 빠른 기호 변화 등 새로운 글로벌 기업 환경에서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더 효과적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벤처 투자자인 히긴스는 오랜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을 보고 투자한 경우보다 비즈니스 모델 때문에 투자한 벤처의 성공 확률이 현저히 높았다"고 말한다. 기술 혁신과는 달리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큰 투자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기존 사업을 달리 볼 수 있는 창의성이 필요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