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직원 김모(39) 차장은 지난달 마이너스 통장 만기를 연장하러 은행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3년 전 주거래통장 금리 할인에 직장인 금리 우대 등을 적용받아 연리 6.9%의 조건으로 3000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쓰고 있었는데 은행에서 갑자기 이자를 7.5%로 높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상담원과 실랑이 끝에 금리를 연 7.3%로 조금 낮추긴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제2금융권 회사에 다니며 아내와 맞벌이를 하는 이모(40) 부장은 최근 아파트를 구입하며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정반대 경험을 했다. 주거래 은행에 2억원 대출을 신청하자, 은행은 "파격적인 수준의 금리를 제공하겠다"며 연 4.9%를 적용해 주었다.

두 사람은 연소득과 신용등급이 비슷한데도, 신용대출을 받은 김씨와 담보대출을 받은 이씨 간 대출금리 격차는 2.4%포인트에 달했다. 하지만 은행권 전체 신용-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이보다 격차가 더 벌어져 있다.

담보-신용 대출 금리차 사상 최대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중 시중 은행권의 신용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8.27%,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5.0%로 집계됐다. 두 대출의 금리 차는 3.27%포인트로 전월에 비해 0.28%포인트 상승했다. 이 같은 금리 차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4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7년 전만 해도 신용-담보대출 간 금리 격차는 0.06%포인트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금리 차가 벌어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2%포인트 차이를 유지해 오다, 올 9월에 처음으로 3%포인트대로 진입했다. 10월에는 금리 격차가 약간 줄었지만, 여전히 3.21%포인트를 기록했다.

대출 수요 격차가 금리차 더 벌려

최근 신용대출 금리가 크게 오른 것은 지난 8월 금융당국이 가계 대출 규제를 강화한 여파로 신규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졌는데, 경기가 악화되면서 서민층, 영세자영업자들의 급전(急錢) 수요는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경제상황이 어려워져 새로 돈 빌리긴 힘들고, 기존에 안고 있던 빚을 연장하려는 수요는 늘어나고 있어 (신용대출) 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권 신용대출금리(연 8.27%)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년 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일각에선 은행들이 저신용자에게 연 12~14% 금리로 돈을 빌려 주는 '새희망홀씨대출' 비중을 늘린 것도 신용대출 금리 평균치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말하지만, 전체 신용대출에서 새희망홀씨대출 비중은 0.5%에 불과해 별로 설득력이 없다.

신용대출 금리의 고공행진과는 달리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초 대비 거의 오르지 않고 있다. 올 들어 부동산 경기가 급락하면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장만하려는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선 주택담보대출은 신용대출보다 돈을 떼일 가능성이 적어 대출을 더 늘리고 싶어하지만, 워낙 대출 수요가 없다보니 앞다퉈 '원가'에 가까운 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서민·자영업자 등 피해 불가피

문제는 신용대출은 서민층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생활비나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점에서, 신용대출 금리의 상승은 이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9월 말 현재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대출이 포함된 은행권 '기타대출' 잔액은 146조원으로 1년 전에 비해 7조1000억원 늘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대출 증가분은 주로 서민 가계생활비, 영세기업인의 운영자금, 자영업자의 개인대출"이라고 말했다.

은행 신용대출 금리가 상승세를 이어가면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린, 신용등급 낮은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경쟁적으로 신용대출 금리를 올린 은행들은 수신금리 인상에는 소극적이다. 10월 기준 은행권의 수신금리(연 3.11%)는 지난해 말(2.85%)보다 0.26%포인트 올랐다. 반면 전체 가계대출 금리는 같은 기간 연 5.08%에서 5.56%로 0.48%포인트 높아졌다. 예금금리 인상 폭보다 대출 금리가 2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