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요? 1주일에 2~3건씩 매물만 쌓이고 거래는 거의 없어요."

3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D부동산중개사무소 김모(47) 사장은 인근 아파트 집주인에게서 '전세를 내놓으려고 한다'는 전화를 받더니 한숨부터 쉬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 컴퓨터 모니터에는 아직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전세 물건이 40개 가까이 쌓여 있었다. 최근 일주일 동안 전세를 구하러 온 손님은 2명뿐. 김씨는 "수능이 너무 쉬워서인지 세입자 중에 강남 인기 학군을 찾는 비율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올해 서울과 수도권 전세난의 진원지였던 강남권 아파트 전세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문의 전화는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세(貰)를 놓겠다는 집주인만 늘고 있다. 해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인기 학군으로 꼽히는 강남구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 일대는 전셋집을 구하려는 학부모로 붐볐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물' 수능시험이 하늘 높이 치솟던 전세난을 잡은 셈이다.

쉬운 수능이 전세 판도도 바꿔놓고 있다. 한때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서울 강남·목동 일대 아파트 전세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29일 잠실의 한 부동산에 급매물을 알리는 시세표가 붙어 있다.

'수능·겨울방학 특수' 사라졌나?

한 달 전만 해도 전세 매물 구하기가 어려웠던 대치동 은마아파트에는 지금 단지 전체에 50건가량이 쌓여 있다. 작년 이맘때와 비교했을 때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준이다.

양천구 목동 3단지는 인근 중개업소에 등록된 전세가 20~30여건으로 작년 11월보다 10%가량 늘어났다. 목동의 K부동산공인 신모(52) 실장은 "처음 전세 매물을 내놨을 때보다 1500만원 이상 가격을 낮춰도 한 달 넘게 거래가 안 된다"고 말했다.

전세 시세도 내려갔다. 국토해양부의 '전·월세 실거래 자료'에 따르면 은마아파트(전용면적 77㎡) 전세금은 지난 9월 3억7000만원에서 한 달 새 최대 5000만원 하락했다.

시들어가는 '인기 학군' 프리미엄

전세 시장이 침체로 돌아선 것은 주로 '학군 프리미엄'이 시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목동 Y부동산공인 사장은 "예전 같으면 겨울방학을 앞두고 강남으로 이사가려는 세입자가 많았는데 올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물 수능'에 따른 전세금 하락은 지방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부산 동래구·대구 수성구 등 지방 대도시의 인기 학군 아파트들도 최근 2~3주 사이에 주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더 크게 조정받는 양상이다. '부동산114' 임병철 팀장은 "전세 시세는 주로 자녀 교육 이주 수요에 따라 밀접하게 움직인다"며 "서울 못지않은 교육열을 보이는 지방 대도시들도 올해 수능이 쉬워진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값싼 매물 찾는 '대기 수요' 충분

올해 가파르게 오른 전세금 부담이 학부모들의 인기 학군행(行) 의지를 꺾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남구 대치동 삼성아파트(59㎡)는 올 초 3억4000만원대였던 전세금이 최근 4억3500만원까지 급등했다. 목동 1단지 아파트(65㎡) 전세금 역시 2억8000만원으로 올 들어서만 4000만원가량 올랐다. M부동산중개소 사장은 "올가을에는 가격을 더 올려줘서라도 전셋집을 구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시세보다 싼 매물만 찾는다"며 "세입자들이 가격이 더 내리길 기다리기 때문에 거래가 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전망도 나온다. 예비 수요층이 상당히 두껍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닥터아파트 이영호 센터장은 "과거 수능시험이 쉬웠을 때 인기 학군에서 전세 시세와 매매가격이 내려간 적은 있지만 일시적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