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로 이사 간 회사원 이모(39)씨는 미용실에 머리를 깎으러 갔다가 기분을 망쳤다. 평소 5000원 주고 깎던 미용실 체인점을 찾을 수 없어, 집 가까운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났더니 1만8000원을 달라는 것이었다. 이씨는 "그렇게 비싼 줄 알았다면 절대 그 미용실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객이 가격을 미리 알 수 있도록 가격표를 붙여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미용실 밖에 가격표가 없어 생긴 일이다.

앞으로는 소비자들의 이런 불만이 해소될 전망이다. 정부가 음식점·미용실 등 개인서비스 업체가 가게 창문이나 출입문에 가격표를 붙이는 '서비스가격 옥외 표시제'를 도입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가격 옥외 표시제는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며 "소비자와 개인사업자가 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 가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선 대부분의 가게가 가격표를 상점 외부에 붙여 놓아, 고객이 상점 내부로 들어오지 않더라도 가격 정보를 알 수 있게 해놨다.

가격표를 꼭꼭 숨기고 있는 국내의 음식점, 이·미용업소, 숙박업소, 학원 등에 대한 불만은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지난 8월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 방안을 공모했을 때도 이 아이디어가 나왔다. '가격표를 바깥에 붙이도록 하면 음식점들이 가격을 조금이라도 내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부도 머리를 끄덕였다. 2001년 8월부터 10년 동안 개인서비스 가격 오름폭(40.6%)이 석유류를 제외한 공업제품(31.6%)보다 컸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정부 의뢰를 받아 실태 조사에 나섰다. 가격으로 승부해야 하는 분식점이나, 가격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이 찾는 호텔 고급 레스토랑 말고는 가격표를 외부에 둔 곳이 드물었다. 숙박업소나 이·미용업소들은 매장 안에도 가격을 표시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학원들은 관련법상 눈에 띄는 장소에 가격표를 둬야 하지만, 구석에 둬 법을 위반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소비자도 불만이 적지 않았다. 지난달 소비자 545명에게 물었더니 응답자의 절반가량(50.3%)이 가격을 모른 채 업소에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온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또 대부분(88.9%)이 가게 바깥에 가격을 표시하면 업소 선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는 앞으로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시범 사업을 벌인 뒤 가격 옥외 표시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업소들의 가격 경쟁을 유도해,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자영업자들은 이 제도를 반기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소비자에게는 이익이 돌아가겠지만 자영업자들은 매출 등에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음식점 등 개인 사업자들의 의견을 더 수렴한 뒤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