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소프트웨어 분야다. 글로벌 IT 업계를 주름잡는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은 모두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삼는 회사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역시 지난 8월 "소프트웨어를 강화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를 위해 회사 안팎의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최지성 부회장은 "연구 개발 인력 가운데 소프트웨어 인력 비중을 현재 50%에서 70%로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발언 이후 3개월이 지난 지금,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키우려는 혼신의 노력이 삼성전자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삼성전자 소프트 파워가 미래를 먹여살린다

16일 오후 12시 삼성전자 수원 캠퍼스(옛 수원공장) 구내식당 한쪽에 마련된 '인디아 푸드 코너(India Food Corner)'. 인도 출신 직원 20여명이 식판에 카레를 담고 있었다. 인도 출신 프로그래머인 다스 쿠마 책임연구원은 "고향에서 먹던 것과 비슷해 음식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이다.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숫자는 2만5000명. 전 세계 직원 20만명 중 13% 선이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3만5000명까지 늘리겠다는 게 삼성 측 계획. 단일 회사 중에 이 규모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보유한 곳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인력은 다국적군이다. 한국인을 제외하면 인도 출신이 가장 많다. 인도 최고 명문대학 IIT(인도공과대학)에서는 삼성전자의 채용 전담 직원들이 상주하다시피 돌아다닌다. 삼성전자의 방갈로르 연구소에만 2800여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있다.

일부 핵심 인재는 한국으로 건너와 소프트웨어 개발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 수원 캠퍼스에서 일하는 인도 출신 직원은 약 100명. 핵심 인력에 속하는 이들을 위해 회사는 구내식당에 '인도 음식 코너'를 새로 만들어 매일 현지와 비슷한 음식을 제공한다. 사장단 회의에서 "식당에서 카레 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중학생, 치과 의사도 찾아오는 삼성 앱개발센터

같은 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삼성전자 앱개발센터 '오션(OCEAN)'. 1650㎡(약 500평) 규모 의 개발실에 중학생부터 30대 초반 치과 의사까지 각양각색 사람들이 프로그램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연중무휴 24시간 문을 여는 이곳에서 먹고 자며 미친 듯이 일하는 사람들의 꿈은 스마트폰용 응용프로그램(앱)을 만들어 창업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8월 오션센터를 만들어 외부 개발자와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이 오션센터를 거쳐 간 교육생과 예비 창업자 숫자는 140명에 이른다.

벌써 성과를 내고 센터에서 나간 이들도 있다. 전남 나주중학교 2학년 노주영군은 올 1월 홀로 상경해 오션센터에 들어왔다. 노군은 3박 4일간 센터 내 휴게실에서 먹고 자면서 스마트폰용 앱 '바다 드럼'을 만들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나오는 드럼을 두드리면 소리가 나오는 앱이다. 벌써 1만명이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거래 장터인 '삼성 앱스'에서 바다 드럼을 내려받아 쓴다. 현재 오션센터에서 만들어진 앱 숫자는 50여개에 이른다.

삼성전자 수원 캠퍼스 구내식당 인도 음식 코너에서 카레를 식판에 담고 있는 인도 출신 프로그래머들.

개발자가 없으면 직접 키운다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육성에도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삼성전자는 16일에는 성균관대와 '소프트웨어 삼성 탤런트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학생들은 2학년 말에 이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다. 5년제 학·석사 연계 과정인 이 프로그램에 선발되면 과정을 마칠 때까지 3년간 장학금을 준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 3월 한양대에 소프트웨어 학과를 신설했다. 5월에는 서울대에 소프트웨어 공동 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소프트웨어 인재를 뽑는 방식도 바꿨다. 올해 소프트웨어 직군을 신설해 9월 처음으로 선발했다. 학점이나 영어 점수보다는 프로그램 실력을 본다. 심지어 필기시험 없이 면접만으로 뽑는 특별전형도 도입했다. 이건희 회장이 '소프트 파워'를 강조하면서 생긴 변화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1년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국대학컴퓨터서클연합회장 출신인 배인식 그래텍 사장이 "전국 대학에 있는 천재적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모여 놀 놀이터를 만들자"고 제안해 생긴 것이다. 멤버십에 들어가면 당시 200만원에 달하던 PC와 각종 프로그램을 무료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지난 20년간 3300명이 이 프로그램을 거쳤고 이 가운데 2800명이 삼성에 입사했다. 지난 10월 지식경제부가 선정한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10명 가운데 5명이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