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게이오대(大)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학내 시설은 복사가게 '타다카피(Tadacopy)'다. 일본어로 '공짜 복사'라는 뜻을 가진 이 가게는 복사비를 따로 받지 않는다. 그 대신 복사지 뒷면에 기업체나 학교 인근 가게들의 광고를 실어 수익을 올린다.

게이오대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2006년 4월 처음 문을 연 '타다카피'는 현재 일본 101개 대학에서 무료 복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작년 매출은 2억8500만엔(약 41억원). 사업 첫해 매출액(2200만엔)보다 10배 이상 성장했다.

일본의 무료 복사 서비스 업체 ‘타다카피’의 직원이 복사지 뒷면에 실린 광고를 보여주고 있다.

타다카피처럼 소비자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면서 높은 수익을 올리거나 시장의 기반을 흔들어놓는 기업이 유행하고 있다. 컨설팅업체 올리버와이만의 신우석 팀장은 "돈을 주고 사야 했던 제품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소비자의 관심과 시장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제3의 수익원을 창출하는 영업 전략이 새롭게 도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짜 서비스로 돈 버는 시대

공짜 마케팅이 제일 성행하는 곳은 온라인 서비스 시장이다. 디지털 상품은 소비자 한 명이 더 이용하더라도 추가 생산비용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용자가 많아지면 광고 수익은 더 커진다.

미국의 온라인 음악 서비스 업체 '판도라(Pandora)'가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는 인터넷 서버에서 몇 곡의 음악을 듣더라도 돈을 받지 않는다. 대신 이용자들은 음악이 나오기 전에 짧은 광고를 들어야 한다.

CJ E&M의 인터넷 야구게임 '마구마구'도 무료 서비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기본 구도는 국내외 프로야구 선수들로 자기 팀을 꾸려 온라인상에서 상대와 대전을 즐기는 것이다. 경기장 곳곳에는 기업 광고판이 등장한다.

'판도라'와 '마구마구'는 광고 수입 외에도 또 다른 수익원을 갖고 있다. '판도라'가 택한 방법은 '프리미엄(Freemium)' 전략이다. 기본 서비스는 무료(Free)지만, 광고 없이 곧바로 음질이 뛰어난 노래를 들으려는 소비자에게는 월 6.99달러(약 7700원)짜리 고급(Premium)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구마구'는 '소액결제(micro payment)' 서비스를 도입했다. 재미와 볼거리를 더 높일 수 있는 아이템을 유료로 판매하는 것이다. 야구 장비(개당 800~1100원)와 체력회복제(1만5000원) 등이 인기리에 팔린다.

본 제품 '미끼'… 소모품 '수익원'

면도기 브랜드 '쉬크'는 이달부터 국내 대형 마트 등에서 신제품 '하이드로'를 10만명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직접 사용해서 그 가치를 실감토록 한다는 체험 마케팅의 일환이다. 여기에는 한 번 고객이 되면 필요한 소모품을 계속 구입하게 되는 '록-인(lock-in)' 전략도 숨어 있다.

보완재를 판매하면서 수익을 얻는 공짜 마케팅은 1900년대 초 면도기 브랜드 질레트(Gillette)가 가장 먼저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면도기를 자주 바꾸는 이유는 면도기 자체가 아니라 면도날이 마모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질레트는 면도기를 무료로 주는 대신 그 면도기에서만 교환이 가능한 면도날을 '별도로' 판매해 일회용 면도기 시장의 수익 모델을 바꿨다.

존슨앤존슨의 혈당측정기 판매 전략도 질레트와 같다. 기존 혈당측정기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제공하는 대신, 혈당을 측정할 때 꼭 필요한 채혈침과 채혈시험지를 별도로 파는 방법으로 영업이익을 30% 가까이 올렸다.

홍성태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가격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비스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