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랑 점심 한 끼 때우기에 양도 적당하고, 괜찮더라고요. 요즘 물가가 얼만데, 이 정도 가격에 이 크기면 만족이죠. 저도 돈가스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하니까 다음에도 또 주문할 것 같아요.”(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이진옥씨(32))

홈플러스는 최근 매장 내 음식점이 모여있는 푸드코드에 기존 메뉴 대비 용량을 2배 이상 키운 ‘왕대박 메뉴’ 3종을 선보였다. 가격은 고작 900원만 올렸다. 용량 대비 가격이 훨씬 싸진 것이다.

지난 금요일(28일) 점심 때에 맞춰 도착한 서울 영등포 홈플러스 문래점 푸드코트. 쇼핑 후 요기를 하려는 전업주부는 물론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려는 인근 직장인들로 북적북적했다. 테이블 너머로 군데군데 높이 쌓인 홍합 껍데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 자녀와 왕대박 돈가스를 나눠먹는 주부를 포함해 20여개 테이블 중에 8곳 이상이 ‘왕대박 메뉴’를 먹고 있었다.

홈플러스 왕대박 짬뽕 실물 사진.

평일인 지난 26일 하루동안 팔린 왕대박 메뉴는 짬뽕 40그릇, 돈까스 42접시, 갈비탕이 22그릇이다. 일반 용량 메뉴가 하루 20그릇 정도 팔리는 것을 감안하면 반응이 매우 좋단다. 주말은 한정 판매량인 50그릇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중식 ‘호소자’ 코너의 이소자 사원(36·여)은 “오늘 점심때까지만 왕대박 메뉴로 30개가 나갔다”면서 “어떤 손님들은 홍합을 까다가 손가락이 아프다고 푸념하기도 한다”고 웃음을 지었다.

싼 가격에 대용량인 ‘이마트피자’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이마트피자(이마트)’, ‘통큰치킨(롯데마트)’, ‘통큰카레(롯데마트)’, ‘왕대박 갈비탕(홈플러스)’ 등으로 이어진 대형마트의 빅 사이즈 먹거리가 본궤도에 오른 모습이다. 지난해 ‘자영업자 생존권 위협’ 대(對) ‘싼 제품을 살 수 있는 소비자 권익’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분위기도 잠잠해졌다. 이마트피자는 하루에 2만판씩 팔리고 있고 ‘통큰 두부, 갈비, 카레’는 질 좋고 저렴한 상품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왕대박메뉴’도 인기몰이 중이다.

◆ 이마트피자 하루 2만장 팔려나가…오뚜기 누른 ‘통큰카레’

대형마트간 빅 사이즈 먹거리 전쟁은 지난해 8월 이마트 역삼점이 크고 값싼 1만1500원의 ‘이마트피자’를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같은해 12월 롯데마트가 시중가의 50%의 ‘통큰치킨’으로 맞불작전을 펼치자 이들 제품은 자영업자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논란을 견디지 못한 롯데가 출시 일주일 만에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로부터 1년. 이마트 피자는 하루에 2만판씩 팔려나간다. 이마트 피자 취급 매장 수는 지난해 12월 20곳에서 10월 126곳으로 늘었다. 전국 137곳 가운데 초소형 매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기존카레 대비 용량이 2배에 달하는 ‘통큰카레·짜장’ ‘통큰김치’를 내놨다. 지난해 8월 출시한 ‘카레·짜장’은 하루 평균 3500개가 팔려나가면서 즉석 카레시장에서 오뚜기카레를 누르고 판매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국 92개 점포에서 선보인 5㎏ 대용량 ‘통큰 김치’는 1만6000원으로 시중가보다 30% 저렴하다. 출시 보름 만에 2만포 이상이 판매됐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내부적으로 각각의 ‘이마트피자’와 ‘통큰시리즈’에 대해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초대형 간식이 출시된 이후 한동안 주춤했던 내방 고객 수도 크게 늘었고, 실적 개선세도 뚜렷하다. 롯데마트의 올 상반기 매출은 3조628억원으로 전분기의 2조4323억원 대비 25.9% 성장했다.

홈플러스가 푸드코트에 '왕대박메뉴'를 출시한 이튿날인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홈플러스문래점 푸드코트를 찾은 고객들이 왕대박 메뉴를 즐기고 있다. 중년의 부부가 왕대박 짬뽕을 나눠먹은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자영업자 위협 vs. 소비자 권익 논란 여전… 미끼상품 한계 벗어나야

대형마트의 빅 사이즈 먹거리는 사회적 기능면에서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주머니 사정이 아쉬운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소비자들은 대형마트의 빅 사이즈 먹거리의 가격이나 품질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산에 사는 주부 하은영(41)씨는 “이마트피자나 통큰시리즈 제품을 자주 구입하는 편이다”라며 “용량에 비해 가격이 싼데다 품질도 괜찮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무차별적으로 확대하면 자영업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반사회적’ 제품이 된다. 롯데마트가 통큰 치킨을 출시했을 때 중소 치킨업체들이 강력 반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소비자들이 가까운 슈퍼를 놔두고 대형마트에 오게 하는 유인책으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초대형 간식’만한 것이 없다. 대형마트의 빅 사이즈 먹거리가 소비자의 권익 보다는 내방객을 늘리기 위한 미끼 상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진용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형마트들이 소형 점포는 물론 전체 시장에서 우월적 지배자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또 “소비자들에게 ‘싸다’는 인상을 주려면 제품이 5% 저렴하다는 식 보다는 로스리더(손해를 보더라도 손님을 끌어올 수 있는 미끼상품)가 낫다”고 덧붙였다.

대형마트의 정도(正道)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마진을 거의 없앤 특정 미끼상품으로 자영업자의 고객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의 원가절감 노력을 통해 전체적인 상품가격을 낮춰 고객을 유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익명의 유통 전문가는 “건강한 유통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골목상권과 대형마트의 영역은 유지되어야 한다”며 “골목상권이 무너져 대형마트 시대가 온다면 결국 독과점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한테 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의 빅 사이즈 먹거리는 소비자 권익과 자영업자 생존권 위협이라는 논란의 중간지대에서 여전히 줄타기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