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화력발전소는 지난해 전기를 만들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시설인 'CCS(이산화탄소 포집·저장)' 플랜트 시범 가동에 들어갔다. 정부 예산으로 진행되는 연구·개발(R&D) 사업이다. 아직 플랜트 규모는 1000㎾급으로 초기 연구 단계다. 정부는 2018년부터 10만㎾급 CCS 플랜트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다. 10만㎾급 CCS 플랜트를 짓기 위해서는 4000억원 정도가 든다. 발전용량 50만㎾ 화력발전소에 CCS 플랜트를 설치한다면 2조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이는 석탄 화력발전소 1기를 짓는 데 드는 비용(7000억~8000억원)의 2배가 넘는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큰 셈이다.

온실가스 감축이 산업계 발등에 불로 떨어졌다. 당장 내년부터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포스코는 당장 내년에 96만3000이산화탄소톤(CO₂t·키워드)을 줄여야 한다. 삼성전자도 42만9000CO₂t을 줄여야 한다. 내년부터 '온실가스 목표관리제'가 시행되면서 366개 기업은 온실가스를 현재보다 1.42% 줄어야 한다. 기업들은 겉으로는 "'녹색성장'이라는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부에서는 "비용 증가로 산업 경쟁력만 악화시킬 것"이라는 불만도 토로한다.

이산화탄소 감축, 발등에 떨어진 불

대기업 A사의 온실가스 담당 김모 과장은 요즘 눈코 뜰 새가 없다. A 기업 역시 내년부터 온실가스 감축량을 할당받아 연말까지 어떻게 줄일지 이행계획서를 정부에 내야 한다. 실무를 맡은 김 과장은 "국내 경기상황도 나빠 회사 실적도 안 좋은 데 생산 효율성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온실가스 감축 설비나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계획서를 작성하기가 눈치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기업 실무자와 이야기해 봐도 다들 '다른 나라는 가만있는데 왜 우리만 이렇게 호들갑이냐'는 불만이 적지 않다"고 했다.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많은 철강업계는 내년 감축 할당량이 130만CO₂t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신공법을 도입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으로 억제했기 때문에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지 않는 이상 더 줄이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과태료 1000만원을 맞을 수도 있지만, 세계 시장에 알려진 우리 철강업체가 환경 문제로 과태료를 맞는다면 국제 시장에서 무슨 망신이겠느냐"고 말했다.

뾰족이 온실가스를 줄일 방법이 마땅치 않은 항공업계도 비상이다. 항공기는 온실가스를 많이 뿜는 항공유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당장 대체 연료가 없다. 대한항공은 기름을 비행에 필요한 양만 주유해 항공기 무게를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최단거리 항로를 찾아내 비행시간을 단축하고, 착륙 후에도 곧바로 엔진을 끄는 방법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이미 설비투자를 통해 온실가스를 줄여와 추가로 드는 비용은 수십억원에 그칠 것으로 봤다.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 시설 투자를 늘릴 때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조원이 들어가는 신규투자를 하면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이를 얼마나 인정해 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2020년까지 온실가스 30% 감축 목표

온실가스 감축은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글로벌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1997년 교토의정서는 1990년 대비 2012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5.2% 줄이기 위해 38개 의무감축 국가의 감축목표를 규정했다. 우리나라는 38개 의무감축국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작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7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다. 1990년대 이후 에너지 소비가 많은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비중이 높은 경제성장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2배 가까이 급증하면서 증가율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최고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은 아니지만 선발 개도국으로 감축목표를 자발적으로 제시해 온실가스를 줄여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중기 감축목표로 2020년까지 예상 배출액의 30%를 줄이기로 했다. 이는 2005년 배출량 기준으로 4%를 줄이는 것으로 개도국 중에서 최대 수준의 감축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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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 이제부터 본격화

2020년까지 30%를 줄이기 위해 2015년부터는 더 강력한 '탄소 배출권 거래제'가 실시될 예정이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을 정하고 이를 초과해 온실가스를 더 내보내야 하는 기업은 돈을 주고 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 산업계 반발로 시행 시기가 2015년으로 늦춰졌고, 규제도 다소 느슨해졌지만 경제단체들은 여전히 반대 입장이다.

대한상의와 전경련 등 18개 경제단체는 지난해 말 "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되면 국내 산업계의 매출이 최대 12조원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의 1.2% 수준이다.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업종인 철강은 조강 생산량 감소와 자동차·조선 등 연계산업에도 적지 않은 파급 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관리공단 장재학 팀장은 "철강 생산이 4% 줄어들면 1조4000억원의 직접 매출 감소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의 최광림 실장은 "국제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정부도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설비 투자에 대해 세제 지원이나 보조금 지급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녹색위원회 관계자는 "그동안 기업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고, 중국 같은 나라는 우리보다 더 강력한 온실가스 규제안을 내놓고 있다"며 "온실가스 감축은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 이산화탄소톤(CO₂t)

국제적으로 온실가스로 인정되는 물질은 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 등 6가지다. 각각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통일하기 위해 배출량이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기준으로 환산해 톤(t) 단위로 표기한 게 이산화탄소톤이다. 예를 들어 메탄 1t은 21CO₂t이 되고, 아산화질소 1t은 310 CO₂t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