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 제대로 운용된다면 5%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 (올해 초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정부의 올해 목표 경제성장률은 5%였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경제 성장률 목표는 4.5%로 0.5%포인트 낮아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올해 성장률이 "한은의 전망치인 4.3%보다 낮아져 4%를 조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4.3%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추정한 우리나라의 잠재 성장률 수준이다.

당초 정부는 올해 소득개선과 대내외 수요회복에 따른 설비투자 증가로 인해 완만한 회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수출은 견조한 회복세를 이어가는 동시에 소비와 투자 확대로 내수의 성장 기여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바탕으로 상반기에는 기저효과로 성장이 둔화되지만 하반기부터는 수출과 내수가 모두 증가하는 '상저하고'의 모습을 예상했다.

그러나 8월부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재정위기의 악화로 인해 우리 경제는 '상저하저'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전 세계 경제 불안이 확산되며 수출이 생각보다 늘지 않고, 연 중 계속되는 고물가는 내수 경기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 IT 불황이 가져온 수출 둔화

지난 2일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9월 무역수지는 14억 달러 흑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 감소했다. 특히 우리의 주력 수출 상품인 반도체와 LCD 등 액정 디바이스의 수출이 올 들어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9월 반도체 수출은 45억68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줄었다. 지난 7월(-12.5%)과 8월(-13.3%)보다 감소폭은 줄었으나 여전히 지난해 성적을 못 내고 있다. 액정 디바이스의 수출 규모 역시 지난 7월(-21%)과 8월(-21.6%)에 이어 9월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줄어들며 하향세를 이어갔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IT 품목의 경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주요 수출 대상국인데 이들 국가의 경제가 호전되기는 커녕 점점 더 악화되면서 수출에도 빨간불이 들어오는 것이다.

앞으로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지식경제부는 4분기 수출 전망에서 "선진국의 수요 위축으로 반도체 수출 확대는 제한적이며 디스플레이는 수급 불균형으로 단기간내 시황개선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외에도 정부는 우리 수출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화학이나 선박 수출에 대해 "석유 화학은 글로벌 수요 정체로 시장 위축 우려가 있으며 선박은 공급과잉, 선박금융 위축 등으로 인도 지연 및 발주 감소가 전망된다"고 밝혔다.

내년 수출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내년도 한국경제 전망을 발표하면서 "내년에는 세계경제 성장률 하락, 일본지진에 따른 반사이익 소멸 등으로 수출 증가율이 올해보다 크게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高물가·소매판매 둔화도 경제성장률 발목잡아

올해 들어 물가가 10개월 연속 4% 이상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것도 경제성장률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높아질 경우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게 되면서 소비가 위축돼 성장률이 낮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물가는 상반기에 구제역·이상기후 등의 여파로 농산물을 중심으로 급등했지만 추석 이후로 농산물 가격이 안정을 보이고 지난해 기저효과로 물가성장률 상승폭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글로벌 재정위기 여파로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급등하고 공공요금이 인상되면서 9월 소비자 물가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상승했다.

글로벌 재정위기의 여파로 소매판매가 둔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경제성장률에는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10월 최근 경제동향(일명, 그린북)을 보면 "소매판매는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 등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으로 증가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신용등급 강등·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돼 주가가 하락해 마이너스의 자산효과(wealth effect)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 정부·민간연구소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낮춰 잡아

글로벌 재정위기로 인한 세계경기 둔화로 수출이 위축되고 점차 내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면서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도 밝지 않다.

우선, 정부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도 계속 후퇴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 경제전망을 하면서 내년 성장률을 5%로 예상했지만 지난 6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는 4.8%로 낮췄다. 이후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이를 다시 4.5%로 낮췄다.

박 장관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묻는 질문에 "12월에 가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인 4.5%는 하방위험이 있다"고 답해 이 마저도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간연구소들의 전망은 이보다 더 낮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9월 21일 '2012년 경제·경영 환경 전망'보고서에서 수출·민간소비 등 한국 경제의 주요 성장동력이 냉각되면서 내년 성장률을 3.6%로 낮춰잡았다.

LG경제연구원 역시 우리나라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 증가율이 올해 20.9%에서 내년 9.4%로 급감할 것이라고 보고 내년 경제성장률을 3.6%로 잡았다. 현대경제연구소는 이보다 앞서 올해 경제성장률 4.2%가 내년에는 4.0%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그동안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던 고용 훈풍도 하반기 들어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고용동향'에서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49만 명 증가하면서 지난 2004년 9월(50만800개) 이후 최대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가 1년 전보다 2만7000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20개월 만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문에 금융시장의 불안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고용전망에 대해 "취업자 수가 늘어나는 속도가 하반기들어 상반기보다는 다소 느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