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5일 미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애플 매장에‘bye(안녕)’라는 글씨를 새긴 사과가 놓여 있다. 잡스 별세 이틀째에도 전 세계에서 추모물결이 이어졌다.

전 세계가 스티브 잡스 애도(哀悼) 열기에 휩싸여 있다.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시(市)에 있는 애플 본사와 인근 자택은 물론, 런던·모스크바·베이징·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 등 세계 주요 도시에 있는 애플 스토어에도 수많은 애플 마니아, 잡스 팬이 몰려와 조화(弔花)와 추모 글을 남겼다. 추모 성명을 발표한 명단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빌 게이츠 MS 회장,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마이클 델 델컴퓨터 CEO,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제리 양 야후 창업자,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등 정·재계 글로벌 리더가 망라돼 있다. 애플의 강력한 경쟁사였던 구글도 초기 화면의 검색창 바로 아래 그의 이름 'Steve Jobs 1955~2011'을 내걸었다.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던 일본의 대표 기업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나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비운의 죽음을 맞았을 때에도 전 세계적인 추모 열기는 아니었다. 더구나 정치인들의 죽음에서 이러한 애도 물결은 최근 수십년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왜 한 창업가의 죽음에 전 세계가 이처럼 안타까워할까.

◆"결합으로 세계인의 삶을 바꿨다"

성균관대 정태명 교수(소프트웨어학과)는 "잡스의 업적은 공학과 인문학, 예술이라는 극(極)과 극의 완전히 다른 분야를 하나로 절묘하게 융합했다는 것"이라며 "그 덕분에 애플 제품은 철저히 소비자의 눈에 맞춰 설계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융합하는 국가와 국민은 흥하고, 융합하지 못하는 국가와 국민은 망한다는 게 잡스 메시지의 핵심이다.

동양과 서양, 그 한가운데에… 스물일곱살 잡스 - 가부좌를 튼 청년이 손에 찻잔과 책을 든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집중’의 힘이 느껴진다. 방에는 전등과 오디오, 몇 장의 LP 말고는 아무 장식도, 가구도 없다. 절제된‘단순함’이다. 1982년 어느 날 자택에서의 27살 스티브 잡스다.“ 내가 반복해서 외우는 주문 중 하나는 집중(focus)과 단순함(simplicity)이다. (집중을 통해) 일단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이처럼 통찰력과 혜안이 있는 그와의 때 이른 작별, 우리가 어찌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잡스가 미 리드대학 청강생 시절에 서체 공부에 푹 빠져 있지 않았다면 매킨토시 컴퓨터와 아이폰의 유려한 글자체, 입력 방식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잡스는 기능이 많고, 복잡할수록 좋은 IT 제품이라는 기존 통념을 완전히 깼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도 조작이 어려우면 소용없다는 것인데, 융합적 사고의 바탕 없이는 불가능한 시도였다. 실제 아이팟은 심플한 디자인에 복잡한 기능을 모두 제거한 단순함으로 단번에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의 80%를 장악했다. 아이폰은 컴맹조차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사용자 환경(user interface)으로 2007년 6월 출시 후 2년 만에 세계 모바일 트렌드를 바꾸어 버렸다.

잡스는 인생 자체가 예술가의 삶이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때 토이스토리 같은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과 온라인 음악 비즈니스(아이튠즈)를 창안했다. 지식경제부 조신 정보통신 디렉터(R&D전략기획단)는 "예술가적 기질이 없다면 음악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다양한 장르에서 시대의 아이콘(상징)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어떻게 보면 그의 삶 자체가 예술가의 삶"이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달랐던 두 천재의 꿈 - “마이크로소프트의 유일한 문제는 취향(taste)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가 생산한 제품에 문화를 넣을 줄 모른다는 거죠.”스티브 잡스(왼쪽)는 동갑내기이자 IT업계 라이벌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오른쪽)를 존중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1991년 모습이다.

◆"콘텐츠의 가치를 재발견"

잡스는 소프트웨어와 앱스토어(각종 응용프로그램을 사고파는 인터넷 거래 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거대한 단일 시장을 새롭게 창출했다. 이 역시 온라인과 모바일, 그리고 콘텐츠를 하나로 엮는 융복합화의 결실이었다. 이제 전 세계의 앱 개발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별다른 제약 없이 앱스토어에 개발한 콘텐츠를 올려놓고 판매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앱스토어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앱 시장 규모는 매년 70~80%씩 성장해 올해 38억 달러(약 4조5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 자료)

이석채 KT 회장은 "모바일을 기반으로 전 세계를 하나로 통합한 거대한 단일 시장을 창출하고 콘텐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것이야말로 잡스가 일군 혁명"이라며 "콘텐츠 분야에 새 투자와 일자리가 생기고 나아가 세계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융복합화는 이미 글로벌 IT 업계에서는 미래의 흥망을 가르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기술 기업의 대표 주자격인 구글은 올해 채용 대상 6000명 중 5000명을 인문학 전공자로 채용하며 연구 개발의 융복합화를 추진하고 있고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각종 제품 디자인과 제품 개발 때 인문학의 상상력을 접목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황창규 지식경제부 R&D 기획단장은 "융복합 산업은 미래 먹을거리 창출의 최대 보고"라며 "더 이상 단일 제품의 경쟁력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며 융복합 산업에 경제 국운(國運)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