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MIT의 '테크놀로지 리뷰'지가 선정한 '세상을 바꿀 젊은 과학자 35명(TR35)'에 김대형(34)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가 들어갔다. 한국인으로는 2008년 하버드대 함돈희 교수에 이어 두 번째다. 테크놀로지 리뷰는 매년 35세 이하 전 세계 과학자 중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낸 35명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리눅스를 개발한 리누스 토르발즈,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 등이 TR35 출신.

김 교수는 인체 전기신호를 기존 센서보다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이른바 '전자피부'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전자피부는 말 그대로 판박이처럼 피부에 완벽하게 달라붙어 각종 신체신호를 감지하고 외부로 전송하는 전자회로다. 김 교수는 지난 8월 '사이언스'지에 이 연구결과를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김대형 서울대 교수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손등에 붙인 전자피부를 보여주고 있다. 김 교수가 만든 전자피부는 반도체 칩을 만드는 실리콘으로 만들었지만, 잘 휘어지고 늘어나 굴곡이 많은 피부나 뇌, 심장 표면에 빈틈없이 달라붙는다.

"생체신호 감지센서에 중앙처리장치와 메모리, 외부에서 라디오파를 받아 충전하는 회로, 태양전지까지 다 들어 있어요. 말하자면 반도체 칩들이 가득 들어 있는 의료장비가 얇은 피부 모양으로 압축된 셈이죠."

김 교수가 보여준 손등에 붙인 전자피부는 펜으로 얇은 금줄을 칠한 모양이었다.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자기 피부인 양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김 교수는 "좀 더 발전하면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자신을 도와줄 로봇 팔을 움직이겠다고 생각하면 손등의 전자피부가 그때 발생하는 뇌 신호를 감지해 그대로 로봇 팔을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부에 전자회로를 붙이려면 잘 휘어지는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보통 플라스틱과 같이 탄소로 이뤄진 유기물질에 금속으로 회로를 만든다. 하지만 김 교수는 아예 반도체 칩을 만드는 무기물질인 실리콘을 택했다. 유기물질은 잘 휘어지지만 실리콘보다 전자회로 효율이 떨어지고 자외선이나 수분, 열에 약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2006년 미 일리노이대로 유학 갈 당시 과학자들은 실리콘을 얇게 깎아내면 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휘어지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었다. 원통에 말면 모를까 옷이나 피부처럼 굴곡이 많은 곳에 붙이면 중간 중간 뜨는 부분이 발생했다.

"골과 마루에 빈틈없이 달라붙으려면 휘어지는 동시에 잘 늘어나야 합니다. 얇게 만든 실리콘 회로 표면에 주름을 잡아 마치 고무처럼 잘 늘어나는 전자회로를 만들었습니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만든 전자회로를 의학용 센서에 먼저 적용했다. 심장 조직 일부가 모양이 틀어지면 심장박동이 정상보다 빠르거나 느려지는 부정맥에 걸린다. 치료법은 해당 부분을 센서로 찾은 다음 고주파로 태워 제거하는 것. 동물실험에서 김 교수가 만든 센서는 심장 표면에 완전히 달라붙어 손상 부위를 정확하게 찾아냈다.

주름이 많은 뇌에도 김 교수의 휘어지고 늘어나는 센서가 적격이다. 김 교수는 간질을 일으키는 이상신호가 나오는 부분을 찾는데 이 센서를 적용했다. 역시 동물실험으로 효능을 입증했다.

전자피부는 이런 센서가 피부 어디에나 달라붙어 인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게 만든 것. 성대가 손상되면 소리는 나지 않지만 말을 할 때 움직이는 목 근육은 살아 있다. 전자피부를 목에 붙이면 근육 움직임으로만 어떤 말을 하려는지 알아낼 수 있다. 이미 이 방식으로 게임기를 작동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팔이나 손등에 붙인 전자피부로 뇌신호를 포착해 생각만으로 기계나 컴퓨터를 작동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성과학고와 서울대를 나와 남들이 5년 걸리는 박사학위를 3년 만에 마쳤다. 8년 동안 사이언스, 네이처 등 세계적인 학술지에 32편의 논문을 썼고 22건의 특허를 획득했다. 누가 봐도 천재 과학자인 그가 늘 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인슈타인도 빌 게이츠도 아닌 테레사 수녀다.

"좋은 논문을 쓰겠다고 하면 좋은 연구를 할 수 없어요. 항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연구를 하겠다고 하면 자연히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결국 좋은 논문이 됩니다."

그는 의료용 센서 연구를 하면서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에 눈을 떴다고 한다. 전자피부는 어떻게 하면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개발국가 사람들에게도 눈을 돌렸다. 그들을 위해 울퉁불퉁한 건물 표면에 완벽하게 달라붙는 저렴한 실리콘 태양전지를 개발해 곧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유학을 가기 전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중소기업에서 4년 반 동안 병역특례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때 대기업의 2·3차 하도급업체 기술자들이 직장을 잃고 한가족이 다 거리로 나앉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한다. "중소기업에서 내몰린 사람들이 다시 일할 수 있으려면 새 기업이 나와야 합니다. 학생들이 기업에 가서 신기술을 개발해 새 일자리를 만들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