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8년 '저(低)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 전략으로 제시했지만, 정작 우리나라 에너지소비 행태는 '녹색'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법을 기피하고 최고급 에너지로 평가받는 '전기'만 쓰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지난 15일 전국에서 발생한 정전 사태도 물가안정을 이유로 낮은 전기요금을 방치한 정부 에너지 정책의 실패와 감독 부실의 합작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열병합발전소도 무용지물로 만든 전기요금

한국가스기술공사에서 근무하는 하재홍 차장은 열병합발전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한숨부터 쉰다. 자신이 설계·시공한 주요 아파트의 열병합발전소 절반 이상이 사실상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열병합발전소는 전기를 만들 때 발생하는 열로 보일러까지 가동하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80%에 달한다. 일반 화력발전소는 투입 에너지의 49% 정도만 전기로 생산한다. 효율적인 발전 방식이 오히려 현장에서는 외면당하는 것이다. 하 차장은 "한국전력이 손해 보면서까지 낮은 요금으로 전기를 제공하고 있어 열병합발전소를 가동하면 오히려 연료(천연가스) 비용이 더 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전력소비량은 세계 9위로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국가로 꼽힌다. 서울 전력거래소 중앙급전소 직원이 전력부하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센트럴시티·롯데월드·서울성모병원 등 서울에 위치한 주요 시설들도 여름 한철 열병합발전소를 가동했다가 바로 중지한다. 소형 열병합발전의 생산단가는 ㎾h당 205원. 이에 반해 한국전력의 전기요금은 ㎾h당 149원으로 열병합발전 비용이 두 배 가까이 비싸다. 정부가 매년 수십억원씩 보조금을 제공하며 설치를 권유한 열병합발전소가 대부분 애물단지로 전락한 이유다. 한때 돈이 될 것이라고 뛰어들었던 기업들이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열병합발전소는 국가 에너지정책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연간 1조원 손실 발생하는 에너지소비 구조"

에너지 효율성이 낮은 전력 소비가 기형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은 각종 통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기 요금은 8년 전인 2002년에 비해 15%밖에 오르지 않았다. 같은 기간 경유 가격은 122%, 등유 가격은 94% 올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등유와 경유 소비량은 지난 8년 동안 50%가량 감소한 반면, 전력 소비량은 56% 늘었다. 전기만 쓰는 에너지소비 구조 때문에 전력 수급은 늘 비상상황이다. 지난 겨울에는 강추위로 인한 난방 수요로 전력예비율이 8%대로 낮아졌고 이달 중순에는 늦더위로 전국이 정전 직전 사태까지 내몰렸다. KDI는 비효율적인 전력 대체 소비로 인한 국가적 에너지 손실은 연간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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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 비전 구호로 끝나나

이 같은 에너지소비 구조로는 정부의 '녹색성장' 비전도 허울 좋은 '구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우 전체 에너지 소비량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19%를 차지했으나, 한국의 경우 신재생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 수준에 불과하다. 국제사회에서 녹색 성장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사회 모델을 제시하며 국가 홍보에 성공한 우리나라가 정작 역할 모델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녹색 강국으로 꼽히는 덴마크는 화석 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국가를 2050년까지 만들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특히 덴마크는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는 화석연료 사용 제로(O) 국가를 만들기 위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비자들이 싼값에 전기를 얻을 수 있다 보니, 대체 에너지나 에너지 절약 기술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녹색성장 산업이 커가는 데도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근본적인 에너지소비 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한 덴마크 모델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