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식품업계에서 후발 업체들이 파란을 일으키면서 부동의 1위 업체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라면시장 1위 농심은 만년 꼴찌였던 한국야쿠르트 ‘꼬꼬면’에 밀려 야심 차게 내놓은 ‘신라면 블랙’ 생산을 중단하는가 하면, 40년 전통의 동서식품이 올해 처음 커피믹스를 만든 ‘남양유업’의 선전에 체면을 구겼다. 섬유유연제 시장과 맥주시장에서는 1,2위의 순위가 아예 바뀌었다. ‘비즈니스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진리가 확인되고 있다.

▲ 한국야쿠르트 '꼬꼬면'(왼쪽)과 농심 '신라면 블랙'(오른쪽).

◆ 후발주자들의 반란…1위 기업의 굴욕 속출

한국야쿠르트의 ‘꼬꼬면’이 농심의 ‘신라면 블랙’을 누른 게 가장 큰 이변이다. ‘꼬꼬면’은 출시 한 달만인 지난 9일 롯데마트 기준 라면 판매순위 3위로 뛰어오른 반면 신라면 블랙은 출시 4개월 만인 최근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라면시장 기준으로 농심이 1위, 한국야쿠르트의 팔도가 4위 수준에 머무르는 것을 감안하면 상상하기 힘들었던 결과다.

또 다른 이변은 남양유업이 커피믹스시장에서 지난 25년 동안 2위 자리를 지켜온 한국네슬레를 누른 것. 지난 6월 대형마트의 국내 커피믹스 시장 점유율은 동서식품(77.1%)이 1위, 남양유업(11.3%) 2위, 한국네슬레(9.7%)가 3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중 하나는 동서식품의 시장점유율이 사상 처음으로 80%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순위가 아예 뒤바뀐 경우도 있다. ‘빨래는 피죤’이라는 정설을 깨고 LG생활건강의 ‘샤프란’이 사상 처음으로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지난 1월 시장점유율 기준 사프란(42.6%)은 피죤(35.8%)을 눌렀다. 6월 기준으론 사프란(43.2%)과 피죤(27%)의 격차가 15% 이상 벌어졌다. 하이트 진로와 오비맥주의 경쟁 관계도 볼만 하다. 부동의 업계 1위로 통하던 하이트맥주가 진로소주와 합병 과정에서 주춤한 사이 오비맥주가 과거의 명성을 업고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 주류협회에 따르면 카스와 하이트의 시장점유율은 지난 2~4월 엎치락뒤치락했으나 5~6월 두 달 연속 카스가 하이트를 압도했다.

◆ 빠르게 바뀌는 시장 대응 미흡했던 탓

사실 식품이나 생활용품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사는 품목이라 웬만해서는 선호도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정설. 그렇다면 늘 일등만 하던 기업들이 갑자기 곤욕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만년 1위에 도취돼 기술혁신과 시장흐름 파악에 태만해지거나 대응력이 떨어질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서식품은 남양유업의 ‘카제인나트륨’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남양유업의 ‘기술혁신’과 ‘식품첨가물‘을 꺼리는 소비자트랜드를 읽지 못한 ’대응능력‘ 부재가 겹친 결과다. 동서식품은 결국 남양유업을 벤치마킹해 프리마를 포함해 커피 제품에 들어가는 ‘카제인나트륨’을 전 제품에서 빼고 ‘천연카제인’을 넣기로 결정했다.

피죤은 샤프란의 ‘고농축 섬유유연제’에 무릎을 꿇었다. 편리하고 간편한 것을 좋아하는 소비자 트랜드를 읽지 못한 것. 물가 인상에 대한 소비자의 심적 부담을 인식하지 못하고 올 초 원자재가격 인상에 따라 ‘나홀로’ 가격 인상에 나선 것도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농심의 ‘신라면 블랙’ 역시 브랜드 파워만 믿고 ‘물가’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과 매운맛에 대한 선호도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경영환경이 불확실해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주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 초 출시한 오비골든라거의 이마트 점유율이 출시 초반 1.6%에서 최근 11%까지 치솟았다”면서 “반면 하이트맥주는 회사 통합과정에서 이렇다 할 신제품 출시나 마케팅 활동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연세대 신동엽 경영학과 교수는 “1위를 계속한 기업들이 결국 덫에 빠지고 마는 경우가 많다”면서 “자신의 강점을 스스로 넘어서는 노력이 수반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시장 판도가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방법이 더는 통하지 않는 것을 인지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