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11시 30분 인천광역시 남구 학익동 인천지방법원 입찰법정. 130여석이 마련된 법정안에 들어서니 이미 좌석은 만원이었고 입구 쪽 통로는 손가방을 든 경매 브로커와 ‘급전마련’, ‘무담보 즉시대출’이라고 적힌 명함을 돌리는 40~50대 아주머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법정은 서울의 여느 법정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부동산 경매서 단연 인기 있는 매물은 아파트지만, 이곳에서는 다세대·연립, 즉 ‘빌라’를 낙찰받기 위해 찾은 사람이 더 많았다. 재판관이 낙찰자를 알려주기 위해 응찰자를 불러 모을 때도 아파트 입찰에서는 많아야 3~4명이 법정 앞으로 나갔지만, 다세대·연립의 경우 8~15명이 몰렸다. 실거주를 목적으로 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차익을 남기기 위해 빌라만 손댄다는 사람도 있었다.

최근 부동산 경매 시장에서 다세대·연립에 대한 인기가 치솟고 있다. 지난달 다세대·연립에 대한 낙찰률과 응찰자 수는 지난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매 전문가들은 다세대·연립에 대한 경매수요가 많아진 이유로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한 가격하락, 정부의 민간임대주택사업자 자격완화 및 세제혜택 등을 꼽았다. 한 경매 참가자는 “요즘엔 전세금이 부르는 게 값이라 싸게 빌라 몇 개 사서 전세나 반(半)전세 주는 게 돈이 된다”며 “1채만 있어도 임대사업자가 되니 세제혜택 부담도 없다”고 말했다.

◆ '빌라'는 아줌마 전문, "요즘엔 프리미엄이 1000만원이에요"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 중 절반이 빌라만 손대는(입찰) 사람이에요. 지난 겨울에도 그러더니 요즘 경기도 안 좋고 대출도 어려워서 다세대·연립 물건이 많이 나오거든요. 값이 1억원 안팎이니 돈 없는 사람들 빌라가 경매로 넘어온 거죠. 한 두 번 유찰된 물건 잘만 사면 돈 1000만원 붙여서 바로 팔아버려요"

땅 물건을 보러왔다는 유모씨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빌라 떼어팔기’가 다시 시작됐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한번에 큰 돈 벌 수 있는 대형 아파트 경매에 집중하지만 요즘 같이 매매 침체에 전세난이 덮쳤을 때는 1억원이면 응찰 가능한 다세대·연립을 싸게 사서 팔아버리거나 몇 채 사서 세주는 것이 돈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경매 정보업체인 ‘부동산태인’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 다세대·연립의 물건 수는 지난해 11월 전세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응찰자 수도 지난 3월 이후 가장 많았다.

이날 다세대·연립 경매에 참여한 한 아주머니는 “간만에 빌라로 돈 벌 수 있는 타이밍이 왔다”고 말했다.

◆ 응찰자 20명 넘는 물건도 많아…"전세 살 돈으로 내 집 사보자"

이날 실거주 목적으로 경매에 참여했다는 한모씨는 2번 유찰된 인천 남구 숭의동의 빌라 1가구를 9990만원에 낙찰받았다. 감정가는 1억4500만원. 응찰자가 15명이나 돼 법정에서 입찰과정을 지켜보는 이들도 한모씨가 낙찰되자 탄성을 질렀다. 감정가를 다 믿을 수 없고, 낙찰받은 물건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감정가보다 5000만원이나 싸게 낙찰받았기 때문이다.

물건으로 나오는 다세대·연립은 대부분 40.2㎡(약 12평)~72.4㎡(약 21평) 수준이다. 지난달 낙찰된 다세대·연립은 대부분 감정가가 적게는 7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8000만원 정도였다.

물건이 많이 나오고 사람도 몰리다 보니 지난달 다세대·연립 낙찰가 총액은 지난 2009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동산태인 관계자는 “일단 빌라는 경매에 참여할 때 드는 비용이 아파트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요즘 같이 돈 구하기 어려운 때에는 인기가 높다”며 “다세대·연립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도 상승하고 있어 경매를 잘만 이용하면 전세 들어갈 돈으로 빌라를 장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부동산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집계된 다세대·연립의 전세가율은 전국 기준 58.1%에 달했다. 서울은 53.6%, 경기와 인천은 각각 54.4%와 53.3%였다. 매매가격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아파트와 비교해서도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48%, 경기 52.1%, 인천은 48.4%였다.

부동산 경매 전문업체 지지옥션의 남승표 연구원은 “인천은 지난 2~3년 전만 해도 빌라를 싸게 낙찰받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프리미엄(웃돈)을 붙여 팔았다”며 “요즘같이 전세가율이 상승하면 매매전환 수요가 늘어나는데, 단순 매매보다는 경매를 통해 매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