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룡 구글한국IT의 성장동력인 휴대폰 사업에 진출한다고 선언하자, 위기의식과 함께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정부와 대기업이 너도나도 소프트웨어(SW) 경쟁력을 키우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무엇이 우선이고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산업의 시작이자 근본인 인력 양성에서 첫 걸음을 떼는 것이 바람직하고 국내에 뿌리박힌 소프트웨어 천대 문화를 일소해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되살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들의 과감한 해외기업 인수도 방법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살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등 한국 IT기업들은 그동안 단말기 등 하드웨어 개발에만 집중한 채 대표적 소프트웨어 기술인 스마트폰 운영체제(OS)는 구글에 의존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이 하드웨어까지 장악하자, SW·하드웨어(HW) 결합의 시너지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우리 SW 산업의 경쟁력을 살펴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세계 100대 SW 기업에 이름을 올린 한국 기업은 단 한곳도 없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이런 상황을 꼬집으면서 “삼성이 어려워지는 건 SW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HW 위주로 성장한 대기업들이 부메랑을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기업들도 최근 이러한 위기상황을 인식,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최근 전자계열사 사장단과의 회의에서 “SW 인력을 대거 확충하라”고 지시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바다’라는 자체 OS를 일부 사용하고 있지만, 바다의 시장점유율은 2%에 불과할 뿐 구글의 안드로이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모바일 의존도가 훨씬 높다.

정부는 ‘토종 OS’ 개발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22일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과 함께 하반기부터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 스마트폰에 쓰이는 토종 OS를 개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기업들과 협의 없이 개발 계획을 발표했을 정도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보유 현금을 적극적으로 활용, 경쟁력 있는 글로벌 SW 업체를 M&A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래픽=조경표

◆ 중소 SW 기업도 살길 마련해줘야

한국 SW산업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병폐도 우리 SW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데 한몫했다. 현재 중소 SW기업들은 삼성과 LG, SK 등 재벌들이 보유한 계열사인 SI(시스템통합) 업체들과 경쟁을 해야하는데 제대로 된 게임을 할 수가 없는 입장이다. 재벌 SI업체들이 그룹 계열사의 IT 관련 발주공사를 독식하다시피했을 뿐만 아니라 공공발주에는 출혈 경쟁을 마다하지 않아 중소 SW업체는 설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경영난에 시달리는 중소 SW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원가도 안되는 가격에 대기업의 하청업무를 맡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쟁력을 갖춘 SW 인력의 저변 확대는 물론 벤처 신화를 쓰는 중소 SW 탄생은 경영난일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SW 생태계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것이다. 대기업 SI업체들은 이런 문제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보다 대기업 SI업체들과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 간의 공정한 경쟁 구도를 만드는 제도가 필요하다. 대기업이 공공 SW 발주 시장을 대거 잠식하는 일을 방지하고 HW와 SW를 분리 발주하거나 일정 발주 비율을 중소기업에 의무 할당하는 등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SW 육성 위한 장기 계획 시급…인력 양성에 힘쏟아야

전문가들은 IT산업 육성을 위한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IT정책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가 제구실을 해야, 민관 협동을 통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인력 양성과 기술 지원 등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IT관련 부처는 지식경제부ㆍ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부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그 결과 규제는 많아졌지만, 컨트롤 타워 기능은 약해졌다. 여기에 불법 SW가 판치는 우리나라 SW 시장 구조도 SW산업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이유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의 SW 인력은 대략 71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대부분은 전산실 관리직으로 순수 SW 개발인력은 전체 인력의 0.5% 수준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SW 개발인력이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의 컴퓨터 소프트웨어학과 정원이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해온 배경이다.

그나마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을 졸업한 우수 인재들은 넥슨이나 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업체로 몰리고 있다. 이들 중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대기업에 입사하더라도 회사가 소프트웨어 기술을 홀대한다며 아예 관련 벤처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나온다.

반면 SW 벤처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빼가는 일이 고질적이라고 항변한다. 핵심 기술진이 빠진 벤처기업은 결국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만다는 게 그들의 목소리다. 안철수 교수도 “벤처기업에서 싹튼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대기업이 연봉과 복지 등 더 좋은 근무 조건으로 영입해가면서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체계가 무너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SW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 인재들이 작은 벤처기업부터 글로벌 대기업까지 각계각층에 포진해 있을 때 세상을 바꿀 ‘소프트웨어 파워’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