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0시(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2시간 떨어진 페블비치 골프장. 세계 최고 명문 골프장의 파5짜리 18번홀 페어웨이 위에는 소장 가치가 대당 수십억원에 달하는 골동품 자동차와 스포츠카·모터사이클 등 229대가 전시돼 있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우아한 차들이다. 이 가운데 골동품 자동차 175대는 올해로 61회를 맞는 '엘레강스 콩쿠르(Concours d'Elegance)'에 출품된 자동차들이다.

세계 최고의 명품 자동차 대회인 '엘레강스 콩쿠르'의 출품 조건은 운행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날 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롤스로이스의 토르스텐 뮐러-오트보스 사장은 "골동품 차량의 복원 수준과 차량 정비 상태 등을 심사해 승자를 가린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미국 캘리포니아 페블비치 골프장에서 열린 세계 명차의 향연‘엘레강스 콩쿠르’에서 1929년형 롤스로이스 팬텀 컨버터블이 관람객들 앞을 지나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페블비치에 모여든 골동품 자동차들

가장 오래된 차는 1894년형 벤츠 빅토리아. 1700㏄짜리 엔진을 탑재했고, 최고속도는 시속 19.2㎞. 이밖에도 롤스로이스·재규어·부가티 등 1900년대 초 차량에서부터 포르쉐·페라리·아스톤마틴 등 근대 스포츠카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동차들이 출품됐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스터츠·패커드·뒤센버그 등도 눈에 띄었다. 이날 출품된 자동차들의 가격을 합치면 3억달러(한화 3100억원)쯤 된다.

개인 소장가들은 이날 오후 2시부터 페블비치 18번홀 그린 옆 클럽하우스 앞으로 자신들의 차를 몰고 행진을 시작했다. 출품된 차량들은 관람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입장했다가, 30초쯤 후 퇴장한다.

스스로를 자동차광(狂)이라고 표현한 외과의사 스티븐 맥콜건 박사는 "자동차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엘레강스 콩쿠르"라면서 "1900년대 골동품 자동차에서부터 대당 300만달러(한화 약 31억원)에 달하는 자동차까지 지난 100여년 동안 인간이 만든 모든 유형의 자동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엘레강스 콩쿠르'는 어떤 대회?

'엘레강스 콩쿠르'는 1950년 11월 페블비치 골프장 인근에서 시작됐다. 당시 출품된 차량은 모두 30대. 이후 230여대까지 늘어났다가 2006년부터 175대로 제한했다. 이번 대회에는 미국을 포함, 13개국에서 골동품 차량들이 출품됐다.

골동품 자동차 소장가들은 해마다 대회 참가를 신청해야 한다. '엘레강스 콩쿠르' 심사위원들은 신청자 중 소수만 선정해 초청한다. 한번 참가하면 10년 동안 출품할 수 없다. 골동품 자동차 소장가들은 '엘레강스 콩쿠르' 심사위원들로부터 낙점받기 위해 수십억원을 들여 골동품 자동차를 수집하고, 고치고, 복원 작업을 한다. 인근 오클랜드에서 왔다는 조지프 에스코바씨는 "돈 많은 전 세계 자동차광(狂)들이 페블비치에 다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관람객은 2만여명. 200달러(한화 21만원)짜리 입장권은 몇 개월 전에 이미 매진됐다. '엘레강스 콩쿠르'의 책자에는 2015년까지 대회 날짜가 정해져 있다. 페블비치에 있는 '롯지' 호텔과 '인 앳 스패니쉬 베이'는 롤스로이스·부가티·벤츠·포르쉐·페라리 등 자동차 업체들이 점령하다시피 했고, '엘레강스 콩쿠르'가 열리는 18번홀 그린 앞에는 전 세계 유명 자동차 업체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명차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

①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페라리의 250 GTO.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했던 차들이다. ② 1970년대말까지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 차우체스쿠가 탔던 1969년형 메르세데스-벤츠 600 프레시덴셜 란드아울렛. 국가 원수급을 위해 단 10대만 제작됐다. ③ 지금은 미국 자동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1934년형 뒤센버그 J 머피컨버터블 쿠페.

명차들의 향연

'엘레강스 콩쿠르'가 세계 최고의 골동품 자동차 대회로 떠오르자, 페블비치 인근에서는 '엘레강스 콩쿠르'를 전후한 시기에 이탈리아 자동차들만 모은 '이탈리아노 콩쿠르', 퀘일 골프장에서 열리는 고가 명품 자동차 쇼, '구딩&컴퍼니' 자동차 경매, '퍼시픽 그로브 자동차 경주 대회' 등 50여개 대회가 파생됐다. 이날 '구딩' 경매에서는 1957년형 페라리 250 테스타 로사가 1640만달러(한화 172억원)에 팔려, 자동차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 자동차 업체들은 아예 신차 발표회를 '엘레강스 콩쿠르'에서 한다. 올해 인피니티는 7인승 JX콘셉트카를 발표했고, 렉서스는 2013년형 GS350을 발표했다. 롤스로이스는 팬텀 전기차 102EX를 페블비치 골프클럽 정문에 전시했고, 부가티·맥라렌·포르쉐 등 고가의 스포츠카들도 다양한 마케팅 행사를 개최했다.

'엘레강스 콩쿠르'를 운영하는 페블비치사(社)는 올해 입장권과 각종 복권 판매를 통해 10억원을 자선 단체 등에 기부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