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 공룡들의 대접전은 향후 벌어질 '클라우드(Cloud)' 대전의 전초전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세계 주요 IT기업들이 '클라우드(Cloud)'라는 새로운 싸움터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클라우드란 서버와 같은 하드웨어, 각종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동영상 콘텐츠 등을 구입하는 대신 필요할 때마다 인터넷에 접속해 빌려쓰고 이용료를 지불하는 서비스다. 문서를 작성하거나 유행하는 음악을 찾아 듣는 것도 클라우드에서 이뤄진다.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자동차 디자인 작업도 클라우드에 접속해 동료와 함께 할 수 있다.

PC시대에는 운영체제(OS)와 중앙처리장치(CPU)가 IT패권을 주도했고, 스마트폰시대에는 OS와 이에 기반한 앱스토어가 시장을 흔들고 있다. 그다음 IT세대는 모든 컴퓨팅기기와 데이터의 허브 역할을 하는 클라우드가 IT기업 순위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PC와 모바일의 통합으로 등장한 태블릿PC와 스마트폰 시대에서는 일부 기능을 단말기에서 처리하고 일부 기능을 인터넷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모든 작업을 인터넷으로 저장하고 처리한다. 클라우드의 가공할 위력은 여기서 나온다. 인터넷의 특성상 승자독자의 법칙이 적용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 클라우드로 무장하는 IT공룡들

이미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시장에서, IBM, HP 등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클라우드 시장에서 광폭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아이폰' '아이패드'로 세계 IT산업의 지각변동을 불러일으켰던 애플은 다음달 클라우드 서비스 '아이클라우드'를 내놓는다. 아이클라우드를 이용하면,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이 만든 단말기로 메일과 캘린더, 사진, 문서 등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구글은 지난 2006년 인터넷에서 문서를 작성하고 저장할 수 있는 구글독스(Google Docs)를 선보였으며 올해엔 웹으로만 구동하는 '크롬북'을 내놓을 계획이다.

아마존은 기업들을 상대로 서버와 스토리지를 빌려주는 클라우드 서비스에 나선 데 이어 최근엔 개인용 클라우드 서비스인 '클라우드 드라이브' '클라우드 플레이어' 등을 출시할 계획이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에 밀려 소비자 시장을 떠난 IBM과 HP, 델 등은 기업용 SW와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역시 초점은 클라우드 서비스다. 이들 업체는 클라우드 서비스에 필요한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관련 소프트웨어 업체도 잇따라 사들이고 있다.

IBM은 최근 싱가포르에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센터를 건설했다. 이로써 IBM은 독일, 캐나다, 미국 등의 기존 데이터센터와 한국, 중국, 인도, 일본, 홍콩,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시아태평양지역의 7개 클라우드 연구소까지 전 세계 13개 클라우드 연구소를 보유하게 됐다.

HP가 최근 기업용 검색엔진 1위인 영국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오토노미를 103억 달러에 인수한 것도 클라우드 서비스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앞으로는 데이터센터에 저장되는 대규모 데이터를 추출, 분석하는 일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HP는 2008년 IT서비스업체인 EDS를 139억 달러에 인수하는 등 기업용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클라우드가 왜 게임의 법칙을 바꾸나

그동안 개인의 디지털 자료는 PC에 있었다. 또 기업들은 각 회사 서버 전산실에 필요한 정보를 저장해두고 처리했다. 클라우드 시대에는 이러한 업무를 모두 구름(cloud)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데이터센터에 처리, 저장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구름에만 접속하면, 데이터센터의 대형 서버와 슈퍼컴퓨터들이 업무를 처리해주기 때문이다.

한번 클라우드 업체를 선택해 사용하면 다른 서비스업체로 바꾸기 어렵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잠금(lock-in) 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클라우드가 거의 모든 IT 자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클라우드 없는 기업은 소비자 접점을 잃어버리는 '승자독식'의 법칙이 클라우드 세상에 일어날 수 있다.

향후에는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등 일상의 모든 제품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이 온다. 냉장고 정보를 분석해 개인 취향에 맞는 요리법을 냉장고 인터넷 창으로 추천해주 되는데 이 모든 정보도 클라우드에서 처리된다. 아이폰 쇼크와 같은 충격이 가전과 자동차 분야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 소비자 시장도, 기업용 시장도 경쟁력 없는 한국

최근 지식경제부는 한국의 클라우드 기술이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4년 이상 격차가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현업의 전문가들의 평가는 더 냉혹하다. 대부분 외산 솔루션을 들여야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급급할 뿐 데이터베이스(DB) 소프트웨어를 연구하거나 가상화 솔루션을 만드는 데는 투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KT, SKT, 다음, 네이버(NHN),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선보였거나 신사업으로 검토 중이지만, 원천 기술을 보유한 곳은 전무하다. 대부분 외산 솔루션을 들여와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서비스하는 수준이다.

미국의 클라우드 전문업체 유칼립투스(Eucalyptus)에서 근무하는 박상민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운영체제, 데이터베이스, 오픈소스, 가상화 등 컴퓨팅 시스템을 만드는 능력이 약하다. 시스템 분야의 총 결합체인 클라우드는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은 여전히 휴대전화 제조에만 매달린다"고 말했다.

국내 통신 기업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담당하는 한 고위 임원은 아예 한숨을 쉬었다. 그는 "구글, 애플, 아마존은 거대 서버를 운영하며 '규모의 경제'를 이룩해 거의 공짜다시피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을 올리는 것이 가능해졌다"면서 "우리는 아무리 계산해도 단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분야의 인력 자체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자 몸값이 뛰고 있지만,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한남석 SK텔레콤 정보기술원장은 "클라우드가 IT 주류가 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인력 자체를 구할 수 없다"면서 "대학 교육부터 총체적인 마스트플랜이 마련되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차세대 성장동력인 클라우드에 정부와 민간이 전문 인력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