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소프트웨어로 권력이동
-전세계 IT업계 M&A 거세질 듯

IT산업의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텔, HP, 델 등 하드웨어 기업들이 IT 산업의 핵심축을 담당했지만 최근 들어 구글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들의 IT 산업내 입지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인터넷 황제’ 구글이 스마트폰용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 진영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하드웨어 강자인 모토로라의 휴대폰 사업을 인수한 것이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 '소프트웨어' IT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소프트웨어가 IT 세상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 것이라는 주장은 과거에도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그러한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컴퓨터 운영체제(OS) 시장을 ‘윈도’로 사실상 독점하고 하드웨어 업체들을 쥐락펴락하던 당시 사람들은 MS의 독점을 비난하기에 급급했을 뿐 소프트웨어로 권력이 이동하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무관심했다. IBM이 컴퓨터와 서버 제조 기업에서 IT 토탈 솔루션 회사로 변신을 선언했을 때도 사람들의 태도가 다르지 않았다.

IT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인식이 대세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애플이 새로운 솔루션과 디자인으로 무장된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잇따라 내놓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애플은 어떤 하드웨어를 생산할지 보다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솔루션을 탑재할 수 있는 운영체제(OS) ‘iOS’와 디지인 개발에 역량을 집중했다. IT 전문가들로부터 생소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애플의 전략이었지만 결과는 한마디로 대박이다. 애플이 미국 뉴욕주식시장 상장 종목중 시가총액 1위에 등극했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스마트폰 등의 ‘안드로이드’ OS를 보유하고 있는 구글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검색서비스사업으로 출발한 구글은 최근 8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모토로라의 휴대폰 사업을 인수해 IT산업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가트너 등 IT 관련 시장조사에 따르면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전체 OS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모토로라 인수로 구글 안드로이드 입지는 더욱 견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무형의 자산이 세상을 지배한다

하드웨어가 IT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에는 누가 최첨단 기기를 먼저 대량 생산하는가에 따라 주도권이 결정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하드웨어를 생산하지 않는 기업도 새로운 기술과 특허 등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되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판매하지만 하드웨어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하드웨어는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100% 외부에 발주하고 그 안에 소프트웨어만 설치해 판매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채용했다. 애플은 남는 여력으로 기기에 탑재되는 OS 개발에 집중했다. 애플리케이션의 경우도 다양한 개발자들이 솔루션을 개발해 인터넷 및 모바일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앱스토어’라는 가상의 장소를 제공했을 뿐이다. 애플은 현재 소프트웨어와 디자인 등 무형의 자산을 무기 삼아 삼성전자에 소송을 거는 등 경쟁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있다.

이에 반해 시류에 적응하지 못하는 하드웨어업체들이 곤두박질치는 사례는 부쩍늘고 있다. 휴대폰시장을 호령했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부문에서 열세를 보이며 이미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아직은 휴대폰시장에서 1위를 하고 있지만 판매량이 급감 추세다.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에 따르면 노키아의 지난 2분기 휴대폰 판매량은 9786만9300대로 전세계 시장점유율 22.8%(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위인 삼성전자(6982만7600대, 점유율 16.3%)와 3위인 LG전자(2442만800대, 5.7%)를 합쳤을 경우 불과 362만900대 차이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1677만8800대에서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TV의 대명사였던 소니가 TV부문에서 8년 연속 적자를 내며 구조조정을 심각하게 고민중이라는 소식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IT 업체들의 부진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패러다임이 변할 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하드웨어에 강점을 지닌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IT업체들도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올들어 이들 업체의 실적 부진에서 볼 수 있듯이 반도체 LCD TV 가전 등 주력 부문의 시장 상황이 최악의 수준이다. 이들 업체가 급변하는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면 제2의 노키아, 제2의 소니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우려가 적지않은 배경이다.

◆ 전세계 IT M&A 큰 시장 열린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패러다임이 변함에 따라 M&A 시장도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하드웨어 생산 기업은 생존을 위해 특허나 소프트웨어를 보유한 기업을 M&A할 필요성이 커켰다. 차별화된 소프트웨어로 자금을 확보한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드웨어 기업을 인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MS의 노키아 인수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하드웨어 강자인 휴렛패커드(HP)도 모바일기기 사업을 포기하고 PC부문의 분사를 결정한 대신 영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오토노미(Autonomy)를 인수키로 했다.

IT업계의 한 전문가는 “세상의 패러다임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면서 향후 IT업계에 M&A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조만간 노키아와 블랙베리의 리서치인모션(RIM) 등이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