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전 선임연구원이었다고 밝힌 최모씨 블로그 캡처화면.

"삼성이 어떻게 한다더라 하면 비판적인 토론 없이 의사 결정이 나버립니다."
"회사에서 연구원들을 철부지 중고생 대하듯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는데 주인의식이 생길 리 만무합니다."

지난 16일 자신을 LG전자의 전 선임연구원이었다고 밝힌 최모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지난 4월 퇴사 당시 CEO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공개했다. 그는 LG전자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LG전자가 방향을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LG전자의 전 선임연구원이었다고 밝힌 최모씨 블로그 캡처화면.

그는 LG전자가 이노베이션(innovation·혁신)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주장’만 하고 있다며 글을 시작했다. 이노베이션은 위험감수가 가능한 문화 속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인데도 이와 같은 문화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LG 전자는 아이디어가 구현될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프로젝트 초기부터 투자수익률을 계산하고 있다”고 했다.

최씨는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는 LG전자의 경직된 문화 또한 크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제품을 만들 기회를 놓치게 한다고 했다. 그는 “LG전자의 보안 때문에 이유 없이 막힌 인터넷 사이트가 의외로 많다”라면서 “아이디어 조사와 기술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접근조차 막히면 대부분 포기하게 된다”고 전했다.

LG전자 내부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없고, 최고 경영진이나 연구소장이 말하면 그대로 의사 결정이 난다고도 했다. 그는 “삼성이 어떻게 한다더라 하면 비판적인 토론 없이 의사 결정이 나버린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의사 결정 시에 관련자들이 반드시 이유를 이해하고 필요하면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돼야 진정으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LG전자의 전 선임연구원이었다고 밝힌 최모씨 블로그 캡처화면.

이와 함께 “주인의식을 가져라”라고 하면서도 연구원들을 주인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철부지 중고생 대하듯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는 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서초 R&D캠퍼스에서 본부와 연구소를 불문하고 지각을 체크해 각 조직별로 통계를 매일 보고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회사가 연구원들을 주인으로 대하지 않는데 주인의식이 생길 수 있겠느냐”고 했다.

LG전자의 전 선임연구원이었다고 밝힌 최모씨 블로그 캡처화면.

글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임정욱 라이코스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 글을 소개하며 “한국조직에 꼭 필요한 것이 ‘자유로운 토론문화를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면서 “위에서 시킨다고 무조건 실행하는 것이 아닌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LG전자에서 최씨와 함께 근무했었다는 이모씨도 “조직문화에 관한 문제 제기에 공감한다”면서 “이노베이션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2004년에 처음 들었는데 그때 그걸 해야 한다고 물었던 CTO(Chief Technology Officer·최고기술경영자)는 스스로도 그게 뭔지 몰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