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이모(52)씨는 자신이 근무한 지방법원 근처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차린 뒤 고가(高價)의 수임료를 받는 사건을 잇달아 맡았다. 하지만 이씨는 사건수임 약정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고 착수금과 성공보수금 일부만 신고하며 6억원의 소득을 탈루(脫漏)했다. 결국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덜미를 잡혀 3억원의 소득세를 추징당했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세무조사를 받은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평균적으로 세무서에 신고한 소득은 실제 소득의 60%에 불과하다. 나머지 40%는 세금 한푼 내지 않고 가져간다는 얘기다.

글로벌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자본주의 3.0)에서 손쉽게 소득을 빼돌리기 위해 탈세(脫稅)라는 불법적인 반칙행위가 스스럼없이 저질러지고 있다.

정당하게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소득을 줄여 신고하는 행위는 사업가들이 사용하는 공공연한 수단이다. 조세연구원은 전문직 종사자와 자영업자 등 개인사업자들이 탈루한 사업소득 규모가 2008년 기준 30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1000조원 수준인 국내총생산(GDP)의 3%에 달하는 금액이고,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근로자들의 연간 급여액 25조4284억원보다 4조5000억원 이상 많다. 여기에는 법인사업자의 탈루 규모가 빠져 있다.

이 때문에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실시해 사업자들이 숨긴 소득을 찾아내고 세금을 거두는 일이 해마다 숨바꼭질처럼 반복되고 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기업으로부터 추징한 세금은 매년 2조~3조원에 달한다. 개인사업자도 세무조사에서 연간 4000억~5000억원의 세금을 토해내고 있다.

신용카드 사용이 꾸준히 늘면서 세원(稅源)이 많이 노출되고 있지만, 지금도 일부 납세자들은 세금 사각지대로 몰리고 있다. 이들이 소득을 숨겨서 내지 않는 세금의 대부분은 봉급 생활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자본주의 4.0 시대에서는 번 만큼 세금도 안 내고 소득을 빼돌리는 반칙이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유리알 지갑인 근로자와의 과세(課稅) 형평을 위해 사업자들의 거래를 투명하게 노출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엔 탈세를 안 하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