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강동구의 K부동산중개업소 박모(54) 사장은 고객으로부터 난처한 전화를 받았다. 48㎡(16평)짜리 재건축 아파트 한 채를 사려고 2주 전부터 집주인과 가격 흥정을 벌이던 투자자가 갑자기 "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를 해온 것이다. '주가 폭락 등으로 불투명해진 경제 상황 때문'이라는 설명이 따라왔다. 중개업소 대표는 "지난달 20여 건이 거래되면서 조금씩 살아나던 주택 시장이 최근 며칠 사이 다시 멈춰 섰다"고 말했다.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국내 부동산 시장을 다시 침체의 '늪'에 빠뜨리고 있다. 지난 4월 초부터 16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던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지난달 말 이후 2주째 변동률 '제로(0)'를 기록하며 반등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 5일 미국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계기로 국내 증시가 폭락을 거듭하자 2008년 미국발(發) 금융 위기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다시 얼어붙었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2008년 9월 세계적인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보호를 신청하고 나서자, 서울의 아파트 시가총액(전체 아파트 가격을 합한 것)은 이후 3개월 동안 24조9200억원(3.7%)이 증발했다. 특히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아파트 전체 가격은 7.1%(18조7600억원)나 감소했다.

이번엔 정부가 내놓을 대책이 별로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부동산114 이호연 팀장은 "금융 불안이 장기화되고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부동산 투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지난달부터 가격이 조금씩 오르며 살아나던 투자 심리가 다시 얼어붙고 있다"면서 "추석 연휴(9월 중순)까지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올해 안에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 위기 여파로 저가 매물이 나오고 그동안 가파르게 올랐던 금리가 안정되면 매수자에겐 오히려 투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실제 2008년 금융 위기 발생 후 3개월 만에 7% 이상 하락했던 강남 3구의 집값이 1년 뒤에는 금융 위기 이전보다 오히려 1.1% 올랐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금융통화위원회가 대외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대응책으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경우 주택 수요자에게 주택담보대출 부담은 줄어든다"며 "국내 금융기관들도 당장 대출 한도를 줄이는 등 투자를 위축시키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