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증시, 2008년 12월 이후 최대로 폭락
- '오바마 입'도 효과 없었다

‘블랙 먼데이’(1987년의 미국 증시 폭락)의 망령은 아시아를 거쳐 미국을 뒤덮었다.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각)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장을 마친 뒤 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인 ‘AAA’를 한 단계 강등한 여파에 따라 투자자들의 팔자 행렬이 이어졌다. 8일 문을 연 미국 주요 3대 지수는 2008년 12월 이후 최대로 곤두박질 쳤다. 하락폭은 5~6%에 달했다.

블루칩 중심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은 600포인트가 넘게 빠지며 1만810.83에 거래를 마쳤다. 종목 중에서는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알루미늄 제조업체 알코아가 각각 20%, 10% 수준 내려 하락세를 주도했다.

나머지 두 지수는 6% 이상 폭락했다. 대형주 중심의 S&P500 지수는 79.85포인트(6.66%) 내린 1119.53,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174.72포인트(6.9%) 떨어진 2357.69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선물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 지수(VIX)’는 장중 40선 위로 뛰어올랐다. 2009년 3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VIX가 30 이상이면 투자자들이 느끼는 불안이 상당히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쇼크는 구원 투수로 나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입’마저 무색하게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는 데 대해 “(S&P의 강등 조치에도) 미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며,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여전히 ‘AAA’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주식 시장은 그러나 반등하기는커녕 시간이 지나면서 낙폭을 키웠다.

이날 주식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은 장본인인 S&P는 미국이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데이비드 비어스 S&P 애널리스트는 “미 달러화가 세계 주요 기축통화로 남아있더라도 빠르게 이전 신용등급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S&P는 지난 5일 주요 신용평가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낮췄다. 미 의회가 부채 상한선 증액 협상과 관련해 합리적인 과정을 보여주지 못했고, 실제로 기록적인 재정 적자를 줄이는 데도 의미 있는 합의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무디스 측도 의회가 추가 재정 감축에 대해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못할 경우 신용등급 강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S&P는 이날 미 정부 관련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잇달아 강등했다. S&P는 패니 매(Fannie Mae)와 프레디 맥(Freddie Mac), 미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일부 대출업체들의 신용등급을 기존의 ‘AAA’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S&P 측은 이들이 미 정부와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어 신용등급을 강등하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2008년 9월 금융위기 당시 미 정부는 이들 기관에 공적 자금을 투입했었다.

앞서 폐장한 유럽 증시도 S&P발 충격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이날 독일 DAX 지수는 5.02% 급락, 6000선 아래로 추락했다. 영국과 프랑스 증시 또한 각각 3.39%, 4.68% 폭락했다. 2년 만에 최저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