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 574억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510억원,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399억원….

지난해 천문학적인 이익을 낸 대기업 오너(owner)들이 올 초 받은 배당금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이 배당금이 얼마가 되든 법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배당금은 회사에 유보해 재투자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개인이 가져가는 돈이고, 이 돈을 도대체 어디에 쓰는지 국민은 궁금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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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올리며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는데도 임금 근로자 90%를 고용하는 중소기업들은 손익 경계선에서 허덕이고, 비정규직·일용직·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은 신분 불안과 저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괜찮은 일자리는 늘지 않고 가계(家計) 빚은 오히려 늘어난다. 일을 하긴 하지만 기본 생계조차 어려운 '워킹 푸어(working poor)'는 가난의 나락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은 초고속·압축 성장을 구가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한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요구한다. 사회의 건강한 통합을 파괴하고 국가라는 유기체 자체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세원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본주의의 그늘을 해결하고 시장을 통한 재분배가 이뤄지도록 해 사회통합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최선진국인 미국도 '시장 지상(market supremacy)'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시작됐다. 월가(街) 방식의 '금융자본주의'가 2008년 세계 경제위기를 몰고 오자 자본주의는 종말을 고하게 됐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이자 저널리스트인 아나톨 칼레츠키는 지난해 말 '자본주의 4.0'이란 저서에서 "자유시장경제에 어둠이 드리우고 자본주의 다음 단계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고 있다"면서 '자본주의의 새로운 버전'의 도래를 예고했다.

자본주의 4.0은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 시대(자본주의 1.0)→1930년대 대공황 이후 케인스가 내세운 수정자본주의(자본주의 2.0)→1970년대 자유시장자본주의=신자유주의(자본주의 3.0)에 이어 등장한 새 자본주의를 뜻한다.

신자유주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동력을 잃고 있던 자본주의에 활력을 불어넣고 세계 경제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세계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는 글로벌 경제시대의 무한경쟁은 승자독식,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 등 부작용을 낳고, 급기야 이대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근본적 한계에 봉착했다.

대안은 크게 두 가지로 모색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복지국가론이 하나다. 그러나 이는 자칫 복지포퓰리즘으로 흐르기 쉽다. 퍼주기식 복지는 한정된 재원(財源)을 고갈시키기 마련이어서 지속가능한 복지를 이끌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다른 하나는 시장과 기업의 생태계를 개혁하고 다시 세우는 것이다. 기업이 이윤만 추구할 게 아니라 사회의 유기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자본주의 4.0'이다. 그래서 경제 생태계 곳곳이 고루 혜택을 보는 '따뜻한 자본주의', '복지자본주의'가 자본주의 4.0의 골자다. 이 방식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경제', '지속가능한 복지'를 이룰 수 있다.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필요성을 공감하고,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자본주의 4.0은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던 자본주의 2.0과 달리 기업의 '사회적 연대의식', 즉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뉴 패러다임"이라며 "이윤과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의 원리, 시장의 원리를 중시하면서도 사회 유기체 모두의 건강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