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삼성전자 휴대전화 ‘SHW-A200S’를 구입하기 위해 서울 용산 전자상가를 둘러본 직장인 황순철(31)씨. 대여섯군데 판매점을 돌아다닌 황 씨는 큰 혼란에 빠졌다. 각 점포마다 제시하는 휴대전화 가격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24개월 약정이라는 조건은 동일하지만 단말기 가격은 3~7만원으로 다양했다. 결국 3만원짜리 휴대전화를 구입한 황 씨는 같은 제품을 더 싸게 구입한 사람이 있을까봐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픽=조경표

◆ 제각각 휴대전화 가격, 제조사 장려금 때문

스마트폰 가입자가 15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이동통신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유독 휴대전화 유통구조만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복잡한 장려금과 보조금·요금제도 탓에 소비자가 혼란스럽기는 지난 1990년대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시장조사기관인 패널인사이트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들이 휴대전화 구매결정을 내리는데 평균 14일이 걸리고, 온라인 사이트 방문횟수는 16.7회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구입을 위해 긴 시간 좌고우면하고, 발품도 많이 판다는 얘기다.

특히 휴대전화 구매 고객의 64.2%는 구매 후 남들보다 비싸게 샀는지 불안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제품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느끼는 소비자는 20%에 육박했다.

이처럼 휴대전화 가격이 점포마다 다르게 매겨지는 것은 삼성전자·LG전자 등 주요 휴대폰 제조사들이 지급하는 장려금 때문이다. 장려금은 제조사가 휴대전화 판매량를 늘리기 위해 각 판매점에 지급하는 금액이다.

판매점들은 제조사들로부터 장려금을 받아 임의로 일정 부분을 이윤으로 챙긴 뒤, 나머지는 소비자들의 단말기 가격을 깎아주는데 사용한다. 예컨대 제조사가 판매점에 10만원의 장려금을 지급하면 유통업체가 7만원을 가지는 대신, 휴대전화 가격은 3만원 깎아주는 식이다. 똑같은 기종의 휴대전화를 누구는 5만원에, 다른 사람은 ‘공짜’로 사게 되는 이유다.

제조사 장려금 외에도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들이 지급하는 ‘보조금’이 있지만. 이는 유통채널에서 가져가는 몫이 없기 때문에 모든 판매점에서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유독 제조사 장려금만 들쭉날쭉한 휴대전화 가격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세계서 가장 짧은 휴대전화 교체주기… 제조사 장려금 때문

장려금으로 인한 폐해는 소비자 혼란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휴대폰 교체 주기도 장려금 남발에 따른 부작용이다. 휴대폰을 많이 팔수록 유통업체에 떨어지는 장려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판매점들이 멀쩡한 휴대전화까지 교체할 것을 권유한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국민들의 휴대전화 교체 주기는 평균 26.9개월이다. 일본 46.3개월, 이탈리아 51.5개월, 핀란드 74.5개월보다 훨씬 짧다. 이 중 제조사 장려금 제도를 택하고 있는 곳은 한국 밖에 없다. 이는 한해 2280만대에 이르는 중고 전화기가 각 가정의 ‘장롱폰’으로 전락하는 원인이다.

장려금을 받으면 당장 휴대전화를 저렴하게 산 것 같은 기분은 들지만, 제조사들이 장려금을 제품 출고가에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점에서 소비자들로서는 오히려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 같은 기종=같은 가격, ‘페어프라이스’ 성공할까

이 때문에 28일 KT가 도입키로 한 ‘페어프라이스(공정가격)’ 제도가 주목을 끈다. 이는 제조사들이 지급하는 장려금 규모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휴대전화를 구입하게 하는 게 골자다.

KT는 주요 휴대전화 기종의 공정가격을 직영 온라인 쇼핑몰(www.ollehshop.com)과 2700개의 공식 대리점에 게시할 계획이다. KT는 제도가 정착되면 소비자들이 더 싸게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곳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 필요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통망의 투명성이 확보되면 제조사 장려금이 축소되고, 이는 제품 출고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표현명 KT개인고객부문 사장은 “제조사들이 장려금으로 지급하는 금액만 한 해 5조4000억원에 달해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등 폐해가 크다”며 “현재 주요 휴대전화 제조사와 페어프라이스 제도 정착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