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초 어느 날, 회사원 나결제씨는 서울 명동 옷가게 앞에 붙은 포스터에 스마트폰을 살짝 댔다. 바로 20% 할인 쿠폰이 온라인으로 스마트폰에 저장됐다. 그 가게로 들어가 청바지를 산 나결제씨는 점원의 안내로 결제기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았다. 20% 할인된 금액에 결제가 이뤄졌다. 매장에서 주는 포인트도 자동으로 적립됐다. 동시에 나결제씨가 구매한 청바지에 어울릴 만한 운동화들이 스마트폰 화면에 나왔다. 근처에 있는 운동화 가게 위치도 지도에 표시돼 나왔다.

최근 대중화가 시작된 'NFC(Near Field Communication·키워드 참조) 전자지갑'이 가능하게 만들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다. 전자지갑이란 신용카드나 현금 대신 휴대폰으로 각종 대금을 결제하는 서비스. 2000년대 초반 이동통신업체들이 주로 시작했지만 사용자들의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아 확산에 애를 먹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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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스마트폰은 일반폰에 비해 인터넷 접속과 활용이 훨씬 자유롭다. 여기에 NFC라는 근거리 쌍방향 통신기술을 적용하면 전자지갑 기능에 온라인쇼핑·온라인할인 쿠폰 등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함께 붙일 수 있다. 똑똑한 전자지갑, 이른바 'NFC 전자지갑'이 탄생한 것이다.

세계 IT·금융업계에서는 NFC 전자지갑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2015년이면 세계 휴대폰의 약 절반이 NFC 전자지갑을 탑재한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일부에서는 '거품'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봇물' 터지는 전자지갑 서비스

NFC 전자지갑 시장의 불씨는 구글이 붙였다. 구글은 지난달 NFC 전자지갑 서비스인 '구글 월릿(Google Wallet)'을 선보였다. 구글 월릿은 NFC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으로 각종 매장에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구글은 결제 정보에 맞춰 사용자에게 다양한 할인 쿠폰을 제공한다. 글로벌 금융기업인 마스터카드씨티그룹도 손을 잡았다. 휴대폰 업체로는 삼성전자가 구글과의 협력 제품 '넥서스S'를 통해 지원한다.

이동통신업체들도 대응에 나섰다. 미국 이동통신업체 버라이즌(Verizon)과 AT&T, T-모바일은 NFC 전자지갑 서비스를 위해 손을 잡았다. 이들은 합작업체 이시스(Isis)를 만들고, 내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시범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영국·일본에서도 전자지갑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이동통신업체들이 서로 손잡았다. 신용카드업체 비자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비롯한 전 세계 14개 은행들과 손을 잡고 NFC 전자지갑 서비스를 올가을 미국과 캐나다에서 실시할 계획이다.

휴대폰 업체로는 노키아가 올해 중 출시될 신형 스마트폰 N9에 NFC 기능을 탑재한다. 소니에릭슨도 최근 NFC 기능 부품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애플HP도 차세대 스마트폰에 NFC 기능을 탑재할 것이 유력하다.

구글의 전자지갑 서비스 '구글 월릿'의 야구장 표 판매 화면이 스마트폰에 표시됐다. 구글은 구글 월릿으로 각종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50%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대박' VS '거품' 불붙는 논쟁

대형 업체들이 NFC 전자지갑 활성화에 나서자 시장에는 장밋빛 전망이 가득하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비전게인(Visiongain)은 "NFC를 통한 전자지갑 서비스 결제 금액이 2015년 1450억달러에 달하고, 전체 판매된 휴대폰 중 47%가 NFC 기능을 탑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시장조사기관 가트너(Gartner) 역시 NFC 전자지갑 이용 건수가 지난해 3억1600만 건에서 2014년 35억7200만 건으로 10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에서 '거품론'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1세대 전자지갑을 좌절시킨 근본적인 문제 두 가지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먼저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선호하는 사용자의 습관이다. 또 하나는 매장들이 생각만큼 NFC 전자지급 결제기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골드어소시에이츠(J.Gold Associates)는 "결제가 간편한 전자지갑 서비스는 사실 매장 입장에서는 '좀 더 소비자를 빨리 매장 밖으로 내모는' 서비스"라고 지적했다.

전자지갑의 보안 문제도 제기된다. 미국 IT전문지 인포월드의 칼럼니스트 이라 윙클러(Winkler)는 "스마트폰에 악성 프로그램을 침투시키면 보안 장치를 한다고 해도 개인의 계좌 정보가 빠져나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서비스·인프라 예전보다는 좋은 조건"

IT업계와 금융업계는 '거품론' 우려를 공격적인 투자로 뚫는다는 계획이다. 구글의 경우 서비스 초기에 마스터카드, 씨티그룹과의 공동 투자를 통해 전 세계 31만개 매장에서 구글 월릿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계획이다.

한국 역시 최근 공격적인 투자 계획이 잇따른다. IT업계에 따르면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 3사는 내년 30만대 이상 전자지갑 서비스 결제기를 설치할 전망이다. 또 국내 통신업체와 금융업체 등은 최근 '코리아NFC표준화포럼'을 출범시키고, 2015년까지 전자지갑 이용자의 비중을 전체 소비자 대비 60%까지 늘리기로 했다.

KT경제경영연구소 관계자는 "온라인 상거래 시장이 세계적으로 지난해 2270억달러에서 2013년 1조달러로 급성장할 것"이라며 "소비자들의 습관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고, 금융·IT업체들의 협력도 두터워져 예전보다 사업 여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KT는 비씨카드를 인수하고 SK텔레콤은 하나금융지주와 합작 기업을 설립했다.

최순호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무엇보다 전자지갑 서비스는 복잡한 공인인증서 등록 등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온라인 쇼핑 서비스에 비해 간편하다"며 "LG전자 등 다른 업체들도 잇달아 NFC 기능 휴대폰을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NFC(Near Field Communication)

10㎝ 이내 거리에서 정보를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는 기술. 기존 전자지갑은 단순히 사용자의 결제 정보를 결제기에 송신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NFC 기술을 활용하면 송신은 물론 수신도 가능하다. 즉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물건 대금을 지불하는 것은 물론, 매장 결제기로부터 할인 쿠폰이나 관련 제품 추천 정보를 받아서 나중에 사용하는 쌍방향 서비스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