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대전의 한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홍모(29)씨는 3개월 전에 카드를 발급한 H카드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카드사 직원은 다짜고짜 "고객님의 지난달 카드 이용 실적이 좋은데요. 한도가 300만원인데, 1000만원 이상으로 늘리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 전화가 걸려온 전날 밤 홍씨는 호프집에서 50만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그 사실을 곧바로 파악한 카드사가 한도를 늘려주겠다고 접근한 것이다. 홍씨의 월급은 300만원 정도이며, 지난달 신용카드로 140만원을 썼다. 그는 "그 뒤에도 3~4차례 전화가 더 왔다"면서 "'빚을 내라'고 부추기는 것 같아 찜찜하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에서 지난 7일 신용카드사의 과당경쟁을 막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카드사들의 경쟁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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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카드의 경우 콜센터에서 매달 20만명의 고객에게 한도를 상향하라고 전화한다. 근무 일수만 따지면 매일 1만명에게 전화를 거는 셈이다. 이 카드사 관계자는 "한도를 50% 이상 소진한 고객에게만 전화한다"며 "고객 중 20~30%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H카드도 매달 5~6만명의 고객에게 전화해 한도 상향을 권유한다고 밝혔다.

한도 상향을 권유하는 기준은 카드사마다 다르다. A카드의 경우 서울의 대기업에 다니는 신용 3등급으로 연봉 6000만원을 버는 8년차 직장인이 매달 300만원(한도 500만원)을 쓰면 200만원의 한도 상향을 권유한다고 말했다. 반면 B카드사는 똑같은 경우 400만~500만원의 한도 상향을 권유한다.

카드사들이 한도 상향에 목매는 이유는 간단하다. 손에 들고 있는 카드 중 자기 회사의 카드를 써달라는 것이다. S카드사 관계자는 "보통 한 사람이 3~4개를 갖고 있을 정도로 카드가 난립하는 가운데 한도를 먼저 높여주는 회사의 카드를 더 많이 쓰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한도를 무리하게 올리게 되면 해당 카드사의 대손충당금 부담이 커져 회사 경영이 발목잡힐 수 있다"며 "주의 깊게 보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6월 초부터 모든 카드사를 대상으로 카드 이용 한도를 얼마나 높여줬는지 매주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무리하게 한도를 상향한 카드사를 적발해 제재를 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