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시한폭탄'의 폭발 시점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국내 정유 4사(社)가 지난 4월 7일부터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리터(L)당 100원 내린 조치가 다음 달 6일로 끝난다. 정유사들은 다음 달 7일 0시를 기해 주유소 공급가격을 원상복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원상복구란 기름 공급가격을 L당 100원씩 다시 올린다는 의미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100원을 올려 공급하면, 소매업체인 주유소는 이윤을 줄이지 않는 한 100원을 올려 받을 수밖에 없다.

기름 없는 주유소, 소비자들 헛걸음… 23일 서울 도봉구 한 주유소 주유기에 ‘경유 재고 부족’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최근 기름값 인하 시한 만료를 앞두고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일부 주유소에서는 기름이 떨어져 소비자들이 헛걸음을 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3일 기준으로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1920.6원. 휘발유 공급가격이 100원 오르고, 주유소가 이를 판매가격에 그대로 반영한다면 다음달 7일부터 휘발유 가격은 L당 2020원으로 급등한다. 더구나 최근 휘발유 판매가격은 13일 연속 올랐다. 이런 오름세가 계속되면 7월 7일 휘발유 가격은 2100원대를 돌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전국 평균보다 L당 70~80원 높은 서울 지역 소비자들은 그야말로 '기름값 폭탄'을 맞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23일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가격은 L당 1996.8원. 휘발유값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7월 7일이면 L당 2096원으로 치솟는다. 이 가격은 2008년 7월 13일 기록했던 사상 최고가(2027.8원)를 70원 가까이 뛰어넘는 수준이다. 2000cc급 YF쏘나타 운전자가 서울 지역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가득 채우기 위해 14만6720원이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름값 폭탄'의 전조(前兆)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경유차를 모는 주부 윤모(45·서울 강북구 미아동)씨는 최근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 3곳을 전전해야 했다. 지난 20일 평소 이용하던 집 근처 주유소 한 곳을 찾았지만 "경유가 다 떨어졌다"고 했다. 2~3㎞ 떨어진 다른 주유소로 갔으나 마찬가지 대답을 들었다. 결국 윤씨는 세 번째 찾아간 주유소에서야 기름을 넣을 수 있었다. 윤씨는 "전쟁이나 지진이 난 상황도 아닌데 어찌 주유소에 기름이 없는 일이 발생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유사들은 예상보다 수요가 폭증해 공급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GS칼텍스의 경우, 6월 1일부터 15일까지 휘발유와 경유 수요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0%가량 급증했다고 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일부 주유소는 평소보다 서너 배 많은 물량을 요구해 사재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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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들은 정유사를 탓했다. 국내 주유소에 싼값으로 공급하기 싫으니 수출에만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의 한 주유소 사장은 "정유사들이 7월 7일 이후 높은 가격을 받고 주유소에 공급하려고 물량을 줄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유사들이 기름값 공급 가격을 100원 인하했지만 소비자들은 제대로 인하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시한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7일 정유사들이 일제히 공급 가격을 인하했지만 일선 주유소들은 "이미 비싸게 주고 산 재고 물량이 남아 있기 때문에 싸게 팔 수 없다"는 이유로 판매 가격을 서서히 내렸다. 실제로 정유사 공급가격 인하 직전인 4월 6일 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1970원이었으나, 이후 휘발유 가격이 가장 낮았던 6월 10일에는 1910원으로 떨어지는 데 그쳤다. 두 달이 지나서야 60원 내려간 것이다. 그 사이 국제유가 상승분이 공급가격에 반영된 것도 100원 인하 효과를 반감시켰다. 기름값을 내릴 때는 천천히 내렸지만 오를 때는 한꺼번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일부 주유소에서 벌써부터 "기름이 떨어져서 팔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정부와 정유사도 '기름값 폭탄'의 폭발력을 줄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내릴 때는 찔끔찔끔 내리더니 올릴 때는 한꺼번에 올리느냐는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다"며 "단계적 인상 방안 등 다양한 출구전략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도 "소비자에게 충격이 가지 않도록 연착륙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지경부는 관세나 유류세 등 기름에 붙는 세금 인하 방안에 대해서도 기획재정부와 협의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