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덕동에 사는 직장 생활 3년차 김모(30)씨는 올해 초 은행에서 3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집주인이 1억7000만원인 전세금을 3000만원 올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대출 당시 금리는 연 5%대. 최근엔 금리가 7%까지 오르면서 김씨의 생활은 더욱 빠듯해졌다. 월급 250만원에서 매달 대출 원리금을 갚고 나면 남는 것은 70만원대가 고작. 좋아하는 영화도 못 보고, 술·담배·외식을 모조리 끊었다. 점심은 구내 식당에서 먹고, 도시락을 싸 가기도 한다. 김씨는 "결혼도 해야 하는데, 대출금 갚느라 결혼 자금 모을 여력도 없다"며, "집 없는 설움을 날마다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큰 폭으로 오른 전셋값 때문에 한 차례 고통받았던 이 '하우스리스 푸어(houseless poor·집 없는 빈곤층)'들이 최근 금리 인상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전세금 인상분을 은행 대출로 해결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전·월세값이 다시 들썩인다.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산 집주인들이 금리 인상으로 늘어난 금융비용을 세를 올려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우스리스 푸어'들은 이래저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실제 올해 1분기 월세 변동률은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5.2%가 올랐다. 개포주공5단지 전용 83㎡ 아파트는 지난해 전세금이 2억8000만~3억2000만원 선이었다. 반(半)전세일 경우 보증금 1억원에 월세는 100만원대였다. 그러나 올해는 전세금이 3억5000만~3억7000만원으로 오르면서, 월 임대료도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40만원으로 덩달아 올랐다.

◆그렇다면 하우스푸어는?

집이 있다고 해서 집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금리 압박과 전세 시장 불황으로 하우스 푸어들도 고달픈 게 요즘 현실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박모(42)씨는 요즘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아내와 얼굴을 마주하면 부부싸움 벌이기가 일쑤다. 요즘엔 '집이 웬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싸움의 원인은 지난해 산 주택 때문. 5억6000만원에 산 서울 용산구 청파동 다세대주택(전용면적 92㎡)은 지은 지 12년 된 낡은 건물로 고갯길 위에 있어 교통도 불편하다. 하지만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룰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은행에서 2억원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아내가 망설이자 "재개발 가능성도 있고, 집값이 오를 테니 미리 사 두면 좋다"라고 설득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부동산 시장침체로 집값은 오를 기미가 안 보인다. 대출 당시 5.2% 수준이던 금리는 최근 1%포인트 넘게 올랐다. 월 100만원씩 물던 이자 비용 역시 갈수록 부담이 추가되고 있다. "매달 60만원씩 받던 용돈도 15만원이나 깎였어요. 기름값, 식비 빼면 친구들이랑 막걸리 한잔하기조차 부담스럽죠."

월 300만~400만원씩 버는 박씨는 중산층에 속한다. 안정적인 직장도 있다. 그런데도 생활에 여유가 없다. 주택 원리금 상환부담 탓이 크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집을 가진 빈곤층)'의 비극인 셈이다. 현재 전국의 하우스푸어는 약 156만9000가구(549만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 약 1691만7000가구 중 9%에 해당하는 셈이다.

지난달 '현대경제연구원'은 '하우스푸어의 구조적 특성' 연구 보고서에 하우스푸어의 조건을 이렇게 정리했다. '주택을 갖고 있고,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으며, 원리금 상환으로 생계에 부담을 느끼고, 실제로 가계지출을 줄이는 가구'.

올 상반기 주택 매매변동률은 서울이 -0.1%, 경기 0.3%, 인천 -0.53%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은행이 지난 10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상해 기준금리가 3.25%로 오르면서 부동산담보대출 금리는 6%대가 됐다. 집값은 내리고 금리는 오른 것이다. 하우스푸어의 고통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