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은 2008년 10월 골프용품 판매와 골프교실을 운영하는 '제이슨골프'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효성의 이 기업 인수에 대해 주식시장은 물론이고 재계에서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중공업과 화학섬유를 주력으로 하고 있는 효성그룹의 사업 분야와 너무나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인수 후 3년이 지났다. 제이슨골프는 누적적자 끝에 부채가 자본보다 많다. 이른바 자본잠식 상태. 최대주주는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효성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30대 그룹이 3일에 1개꼴로 새 계열사를 만들었지만 절반가량이 적자 상태에 빠져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존 사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인지, 신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미래 산업 분야인지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진출한 예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중 일부는 그룹 총수나 2~3세의 개인적인 취미와 기호, 관심 때문에 인수하거나 설립한 회사도 적지 않다.

30대 그룹 계열사 중 유독 와인 유통업체가 많다. 그룹 총수, 총수 2~3세의 개인적 기호와 무관하지 않다. SK그룹(더블유에스통상)과 신세계그룹(신세계L&B)은 와인 수입·유통기업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이들 와인수입·유통업체는 지난해 무더기 적자를 기록했다. 중소 와인업체 관계자들은 "올 게 왔다"는 평가다. 이들 대기업이 2008년 와인수입 전문회사를 잇따라 세우자 "대기업 총수 일가의 와인에 대한 관심 때문에 와인 업계가 큰 봉변을 당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것이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소속 중소기업인들이 지난달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MRO(소모성 자재 구매대행)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 진출 확대를 성토하고 있다. 이후 MRO 사업에 진출한 일부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시장진출 자제'에 합의했지만,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대기업들은‘땅따먹기’식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

주요 그룹의 신규 사업 확장은 그룹 총수뿐 아니라 2~3세와 친·인척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효성의 경우 2006년 이후 새로 계열사로 편입한 25개 회사 가운데 16개 회사가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이 중 상당수 회사가 조현준·현문·현상 등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아들 3형제가 지분을 투자했거나, 지분을 투자한 회사의 자회사들이다. 효성커뮤니케이션즈(모바일 서비스)·갤럭시아포토닉스(반도체부품)·갤럭시아디스플레이(터치스크린제조)·동륭실업(부동산임대)·효성토요타(수입차)·제이슨골프(골프용품) 등이 그런 예다.

30대 그룹이 문어발식으로 확장한 기업의 적자는 해당 기업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 기업의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해 그룹의 주력사가 증자(增資) 등의 방식으로 적자를 메우는 일이 잦다. 실제 효성은 지난달 조현준 사장 등이 지분을 갖고 있는 갤럭시아포토닉스 증자에 단독으로 참여, 198억원을 집어넣었다. 책임을 져야 할 조현준 사장 등 효성 3세들은 증자에 참여하지 않았다. 효성의 주식을 갖고 있는 소액주주들로서는 "그룹 총수 자녀들이 무분별하게 벌인 사업의 뒤치다꺼리를 왜 우리가 대신해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릴 일이다.

CJ그룹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7년 타니앤어소시에이츠란 음식·주점업체를 그룹에 편입시켰는데, 이 회사 대주주는 이재현 CJ회장의 처남 김흥기씨 일가다. 이 회사는 현재 적자를 거듭하며 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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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업종과 동떨어져 황당한 사업에 진출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수록 적자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화약·화학사업이 주력인 한화그룹이 작물재배를 하는 농업법인 그린투모로우를 최근 계열사로 편입시켰고, 효성도 농산물 재배 회사인 거목농산을 계열사로 갖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지난해 적자를 냈다. SK그룹의 해양심층 생수 회사인 파나블루의 경우 매출액(36억5000만원)보다 당기순손실(58억원)이 더 컸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기업이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한 뒤 적자가 나면 자금력을 바탕으로 모(母)기업이 억지 지원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그런 행태가 건전한 시장 경쟁을 교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