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게임업체 게임빌은 지난 4월 아이폰용 게임 '에어 펭귄'을 애플의 북미지역 앱스토어(온라인 장터)를 통해 0.99달러에 출시했다. 아이폰을 기울이면 펭귄이 점프해 빙하를 건너가는 이 게임은 등록 직후 6일간 1위에 올라 1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국내 아이폰 사용자들은 이 게임을 즐길 수가 없다. 애플이 한국 앱스토어에서는 게임을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게임등급 심의제도, 이용시간 제한조치 등 각종 규제가 심해 게임관련 서비스를 할 생각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게임의 주 이용자인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외국 회사들도 국내에서 영업을 하려면 국내법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부모 단체들도 정부 측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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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구글 "규제 때문에 한국에선 게임 서비스 안 한다"

세계 모바일게임 시장은 2007년 5조4417억원에서 2010년 9조3808억원으로 늘어났다. 여기에는 2007년 처음 출시된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의 역할이 컸다. 애플은 아이폰용 응용프로그램(앱)을 사고파는 앱스토어를 설치하고 전 세계 개발자들과 판매수익을 나눠 갖는 '모바일 생태계'를 만들었다.

전 세계 게임 개발자들이 앱스토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바일게임 제작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시장은 급속히 확대됐다. 애플에 이어 등장한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켓'도 삼성전자의 갤럭시S 같은 스마트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모바일게임을 제공한다.

하지만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이들 게임을 제대로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모바일게임에 대한 규제 때문이다. 국내에서 게임을 출시하려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

애플과 구글은 "수많은 게임에 대해 모두 심의를 받기가 불가능하다"며 한국에서 게임판매 서비스를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먼저 게임을 출시해 반응이 좋으면 해외에 출시해온 우리나라 게임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애플과 구글이 국내에서 게임 서비스를 하지 않는 바람에 해외 시장에 먼저 진출해야 하므로 그만큼 실패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이 이어지자 국회는 지난 3월 게임에 대한 사전 심의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켜, 이르면 다음 달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핀란드 로비오사(社)가 개발해 전 세계 8000만명이 즐기는 모바일게임 '앵그리버드'. 작년 말 애플앱스토어에서 '올해의 앱'으로 선정됐다.

정부·학부모 "게임중독 막으려면 적절한 규제 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청소년들이 심야에 게임을 할 수 없게 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키워드 참조) 제도'가 등장했다. 모바일게임은 일단 셧다운제 적용 대상에서는 빠졌지만 학부모들의 요청에 따라 시장 상황을 봐서 적용 여부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애플과 구글은 한국에서 게임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나중에 규제가 심해지면 낭패여서 현재로서는 게임 서비스를 시작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에도 국내에선 모바일게임 개발과 판매가 어려울 전망이다.

신필수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실장은 "국내 모바일게임 개발자들은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이나 1인 개발자가 많아 정부의 규제가 계속될 경우 버티기 힘들다"면서 "셧다운제가 시행되면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 자체가 고사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게임업계가 모바일게임을 '산업'으로 보고 서비스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학부모들은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을 우려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국회가 셧다운 제도를 입법화하는 과정에도 학부들의 입김이 컸다.

김민선 아이건강국민연대 사무국장은 "PC 게임이든 모바일이든 밤 12시 이후에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는 것은 건강을 해치고 게임중독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면서 "셧다운 제도가 실시되면 온라인 PC게임 업체들이 모바일게임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므로 모바일게임도 셧다운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곤 한국게임산업협회 사무국장은 "게임 사전심의 제도에 이어 셧다운 제도까지 등장하면서 모바일게임산업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 셧다운(shut down) 제도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이 게임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밤 12시부터 오전 6시 사이 심야시간대에 게임 접속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 오는 11월부터 일반 게임을 대상으로 시행하며 모바일게임에 대해서는 2년 뒤 적용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