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을 사용하려면 플러그인이 필요합니다. 설치하시겠습니까?"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종종 이런 메시지가 나온다. 키보드 보안, 바이러스 감시 같은 보조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임 사이트에서는 동영상 광고나 사진이 들어 있어야 할 자리에 'X'자가 그려진 채 내용이 안 보일 때도 있다. 플래시·액티브X와 같은 보조 프로그램이 안 깔려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표준 기술은 기본적으로 동영상이나 애니메이션 효과를 지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보는 화려한 화면은 모두 보조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재생하는 데는 플래시 프로그램이, 공인인증서 확인이나 보안 프로그램에는 액티브X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런 프로그램은 컴퓨터·스마트폰·태블릿PC용으로 각각의 기종에 맞게 일일이 따로 개발해야 한다.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인터넷 기기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애플의 최고경영 자(CEO) 스티브 잡스가 인터넷 홈 페이지를 제작하 는 최신 기술인 HTML5의 장점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답답한 인터넷은 가라… 최신 홈페이지 기술 HTML5 등장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드는 데 쓰는 'HTML' 언어의 최신판인 'HTML5<키워드 참조>'를 쓰면 된다. 'HTML5'는 동영상 재생, 사용자 위치파악, 음성인식 등의 기능을 인터넷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HTML은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정한 일종의 인터넷 문법이다. 글을 쓸 때 '나는 생각한다'는 식으로 주어·조사·동사를 문법에 맞춰 쓰는 것처럼 홈페이지를 제작할 때도 표준 형식에 따라 제작해야 한다. HTML은 1980년대에 처음 만들어졌고, 계속 기능개선을 거쳐 1999년에 표준으로 도입된 'HTML 4.01'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10년이 넘은 기술을 아직까지 사용하다 보니 여러 한계가 드러났다.

동영상 같은 멀티미디어 기술, 해킹을 방어하는 보안 기술,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 등이 속속 생겨났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플래시나 액티브X 같은 다양한 보조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들은 표준 규격이 아니기에 기기 간에 호환성이 떨어졌다. 동일한 홈페이지가 컴퓨터 기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거나 보조 프로그램끼리 충돌을 일으켜 실행 속도가 느려지는 일이 발생해 사용자를 짜증 나게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해 국제 인터넷 표준을 정하는 W3C(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는 지난 2월 HTML5의 초안을 발표했다. 아직 표준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보조 프로그램이 없이 인터넷 브라우저만으로 복잡한 게임까지 돌릴 수 있을 정도로 기능이 향상됐다.

보조 프로그램 없이도 멀티미디어·보안 기능 사용

W3C는 지난 2004년부터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IT업체들과 함께 HTML5 기술의 표준화를 추진해왔다. 목표는 현재 인터넷에 쓰이는 대부분의 기능을 HTML 자체에 흡수해 PC·스마트폰·태블릿PC 등 여러 기종의 다양한 환경에서 같은 화면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W3C는 초안을 공개해 보완작업을 거친 뒤 2014년에 표준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HTML5 도입에 가장 앞장선 곳은 구글이다. 구글은 온라인 장터 '크롬 웹스토어'에서 HTML5 기술로 만든 다양한 인터넷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있다. 워드프로세서와 같은 온라인 사무용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스마트폰에서 큰 히트를 기록한 '앵그리버드'와 같은 게임도 있다.

구글은 지난달 열린 '구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신개념 노트북PC '크롬북'을 발표했다. 이 노트북은 HTML5 기술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다. 구글의 순다 피차이 수석부사장은 "기존 PC에서 하던 대부분의 작업을 인터넷에 접속해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HTML5의 시대가 열리는 데는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한몫했다. 잡스는 지난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동영상보기 프로그램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HTML5로 플래시를 대체할 수 있다"며 "플래시는 최적화된 기술이 아니고, 앞으로는 대부분 표준 기술인 HTML5를 쓰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애플에 이어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도 빠르게 HTML5를 속속 도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순다 피차이 구글 수석 부사장이 지난 5월 미국 샌프란 시스코에서 열린‘구글I/O’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인터 넷 기반 노트북PC ‘크롬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부기관·네이버도 표준기술 속속 도입

국내 인터넷 환경도 빠르게 HTML5로 바뀌어가고 있다.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는 애플처럼 플래시 사용을 줄이고 점진적으로 HTML5로 바꿔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홈페이지 개발이 쉽고 사용도 편리한 HTML5 같은 표준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서비스를 개편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도 HTML5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3월 액티브X 등 인터넷에서 쓰이는 비표준 보조 프로그램을 퇴출하고 HTML5 같은 표준 기술로 대체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14년까지 정부기관 홈페이지 등을 HTML5 기술로 만들기로 했다.

HTML5(HyperText Markup Language 5)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데 쓰이는 최신 규칙. 화면상에 표시할 글자의 색깔과 크기를 정하거나 줄 바꿈, 선 긋기 등의 기능을 표준으로 정해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