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Smart Grid·지능형 전력망) 시범사업(제주도 실증단지 사업)이 3년째를 맞은 가운데, 전기요금과 판매 제도가 핵심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지식경제부, 한국전력 등은 스마트그리드 활성화를 위해 전기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비해 KT, SKT 등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진출한 통신회사들은 전기요금 현실화와 함께 전력 재판매 허용을 은근히 바라고 있다.

전기요금 현실화 없이는 스마트그리드도 없다

스마트그리드는 전기 사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발전소 가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본 목표다. 이를 위해 미터기 교체 등 관련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원가보다 낮은 현행 전기요금제 아래에서는 개별 소비자들이 굳이 스마트그리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에 참여한 조송만 누리텔레콤 사장은 "전기 소비자가 전기요금을 절약할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껴야만 스마트그리드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전기요금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09년에 한국의 평균 전기요금은 kWh당 83.59원으로 일본(202.30원), 미국(115.48원), 영국(184.39원) 등 주요 선진국보다 한참 낮다. 전체 전력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 판매 단가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지식경제부 최중경 장관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올 후반기 인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높은 물가, 비싼 대학등록금 등의 이슈 때문에 전기요금을 대폭 올리기도 힘든 분위기다.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에서 전력거래소 직원들이 전력 회로도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전력시장에 판매경쟁 도입되나

스마트그리드에서 신사업 기회를 엿보는 통신업체들은 전력 재판매가 전기요금 인상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전력 재판매는 한전의 전기를 다른 판매사업자들이 구매해서 재판매하는 것. 이동통신사업자들이 이동통신재판매(MVNO) 사업자에게 통신망을 빌려주는 것과 비슷하다.

한 민간기업 관계자는 "지금처럼 한전이 전력판매를 독점하는 상황에서는 스마트그리드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한전이 전력판매 시장을 개방하고 경쟁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 판매 시장에 스마트그리드와 함께 경쟁원리를 도입하면 서비스 및 가격경쟁이 일어나 중·장기적으로 전기요금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2000년부터 전력 소매판매 자유화를 도입했던 일본의 경우 전기요금이 18% 하락했다.

전력 재판매에 대한 한전의 반대 입장은 단호하다. 한전 배성환 스마트그리드추진실장은 "현재 전기요금은 경쟁으로 더 낮출 수 없을 만큼 매우 낮다. 재판매를 하면 마진이 붙어야 하는데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나라마다 전력체계가 다른데, 한국은 한전의 독점체제로 얻은 이익이 분명히 있다. 갑자기 완전경쟁으로 가는 것은 현재의 이점을 포기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 스마트 그리드 실증사업

지능형 송·배전망과 스마트 미터 등 다양한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실제 가정에 적용하는 사업이다. 한국전력 등 여러 사업자는 실제 가정에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적용해보고 발견되는 문제점을 고칠 수 있다. 지난 2009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제주시 구좌읍 일대 약 6000가구를 대상으로 인프라 구축을 하는 1단계 실증사업이 진행됐다. 오는 2013년 5월까지 사업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