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는 수많은 관중 앞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해 놀라움을 안겼다. 쓰나미(지진해일)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을 덮칠 때 마술처럼 원전을 사라지게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과학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해안가나 건물에 일종의 투명망토를 씌워 쓰나미나 지진파가 그쪽으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 거친 파도를 잔잔한 바닷물로 바꿔

영국의 과학대중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지난 4일 중국 푸단대의 신후아 후(Hu) 박사 연구진이 물리학의 투명망토 원리를 이용해 해안을 강한 파도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전했다. 물리학 국제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게재될 논문을 보면 파도 보호장치는 원통형 기둥이 바다에 촘촘히 박혀 있는 형태다. 기둥은 대나무를 길게 네 쪽으로 자른 모양이다.

파도에 해안이 보이지 않게 하는 원리는 이렇다. 파도는 골과 마루가 연속으로 이어진 일종의 파동(波動)이다. 파도가 해안가로 들이닥치면 위로 솟은 마루일 때 바닷물이 기둥 안으로 들어가 위까지 채운다. 마루가 지나가면 기둥에 채워졌던 바닷물이 다시 빠져나가 'V'자 형태의 골을 채워 평평하게 한다. 결국 마루와 골의 구분이 사라져 바닷물이 잔잔해진다. 쓰나미가 왔다가 잔잔한 바다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앞바다에 설치된 기둥은 파도가 해안에 도달하지 않게 하는 동시에 전기도 만들 수 있다. 기둥의 크기와 기둥 간 간격, 기둥의 틈 폭을 조절해 특정 파장의 파도를 막아낼 수 있다. 기둥에는 파도의 높이가 가장 높을 때 바닷물이 채워졌다가 파도의 높이가 낮은 곳으로 빠져나가 결과적으로 파도를 평평하게 한다. 이때 기둥 안의 부유체나 피스톤이 아래위로 움직여 전기를 만들 수 있다.

푸단대 연구진은 투명망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의 존 펜드리(Pendry) 교수와 미 듀크대의 데이비드 스미스(Smith) 교수는 2006년 처음으로 투명망토의 원리를 만들고 실험으로 입증했다. 이들은 강물이 바위를 따라 돌아가는 것과 같이 빛이 물체에 부딪히거나 흡수되지 않고 돌아나가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연에 없는 음(-)의 굴절률을 가진 물질은 빛을 굴절시킨다. 바로 ’메타물질(meta material)‘이다. 지금까지 실리콘이나 유리 섬유로 만든 다양한 메타물질이 개발돼 마이크로파에서 가시광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빛을 물체 주위로 돌아나게 했다. 푸단대 연구진도 파도가 기둥 때문에 해안에 닿지 않고 돌아나가게 한 것이다.

◆ 지진 막는 투명망토도 같은 원리

파도를 막는 투명망토는 2008년 프랑스 프레넬 연구소의 스테판 에녹(Enoch) 박사와 영국 리버풀대의 세바스티앵 귀노(Guenneau) 교수가 처음 제안했다. 이들은 파도 역시 빛과 마찬가지로 파동이라는 데 착안했다.

연구진은 물체를 가운데 두고 7개의 동심원을 만들었다. 각각의 동심원은 작은 기둥 100개로 구성된다. 마지막 동심원의 지름은 10㎝. 실험실에서 작은 파도를 만들어 동심원으로 향하게 했더니 가운데 물체에는 파도가 전혀 닿지 않았다. 파도는 동심원으로 들어와 기둥에 부딪히고는 소용돌이처럼 옆으로 돌아나갔다. 메타물질에서 빛이 돌아나가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푸단대 연구진은 에녹 박사팀의 연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즉 동심원으로 늘어선 기둥들이 일종의 벽이 돼 파도를 옆으로 돌아나가게 하는 대신, 기둥 하나하나가 바닷물을 채웠다가 방출하면서 물결파가 해안에 닿지 않고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푸단대 연구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둥의 크기나 기둥 간의 간격, 바닷물이 들어오는 틈의 폭을 조절해 특정 파장의 파도를 막아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크기가 다른 기둥을 간격을 달리해 설치하면 여러 가지 파장이 섞여 있는 파도도 막아낼 수 있다고 밝혔다.

지진파 역시 파동이다. 에녹 박사팀은 2009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땅속 건물의 기초를 지름 10미터, 두께 10㎝의 플라스틱 고리로 둘러싸면 지진파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지진파는 원형 고리를 압축시켰다가 뒤로 돌아나갔다. 같은 해 리버풀대 귀노 교수는 다양한 파장의 지진을 막으려면 100개 정도의 고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일상생활에 도움 주는 기술로 개발 가능

쓰나미나 지진을 막아주는 투명망토는 아직은 아주 작은 규모로 실험했거나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본 데 그친다. 다른 과학자들은 쓰나미가 기둥의 틈으로 들이닥칠 때의 마찰력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기둥 자체가 쓰나미에 견딜 만큼 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연구진 역시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하지만 당장 쓰나미나 지진을 막지 못해도 다른 곳에서는 쓸모가 크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쓰나미 투명망토의 경우 바닷물이 기둥을 채웠다가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피스톤을 가동시켜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또 지진파 투명망토의 경우 크기를 줄이면 자동차나 기계의 진동을 줄일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