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들은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이 재임하던 시기(2008년 3월~2011년 3월)에 급격하게 부실의 길로 빠져들었다. 2009년 말 저축은행 PF(프로젝트 파이낸싱·부동산개발사업) 대출의 부실채권 규모가 6700억원이었지만 1년 만인 지난해 말 1조1300억원으로 급증할 정도였다.

이 시기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오고 국내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저축은행들의 PF대출이 빠른 속도로 부실해졌다. 또 부산저축은행그룹이 4조5000억원대의 불법 대출을 하고, 2조4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하던 것도 2008~2010년에 집중된다.

하지만 금감원은 지난해 1~3월 감사원의 지시를 받은 예금보험공사와 공동으로 5개 저축은행에 대해 표본검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감사원은 저축은행 5곳 중 4곳에 대해 적기시정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금감원은 "그렇게 무리하게 몰아붙이면 안 된다"며 감사원에 맞섰다. 감사원 주장대로 저축은행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경우 저축은행 가운데 살아남을 곳이 없다는 논리였다. 결과적으로 감사원이 옳았던 게 증명됐다. 김 전 원장은 지난 3월 퇴임 간담회에서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늦었다는 지적을 받자,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했다면 금융시스템이 붕괴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20일 저축은행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그는 금감원장 재직 시절 저축은행에 대한 조치에 소극적이었고, 자신이 주요 주주였던 아시아신탁의 급성장을 도와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장급 이상 간부들은 저축은행의 부실이 어느 정도인지 감지 못했고, 실무진은 저축은행과 유착돼 있었지만 김 전 원장은 이런 현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부국장급 이하 일부 직원들은 금품은 물론 아파트 이사비나 그랜저 승용차를 받거나 감사원의 기밀문서를 저축은행에 유출하는 심각한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일례로 금감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부실화된 대전저축은행을 당시 업계 1위이던 부산저축은행에 M&A(인수·합병)시켰다.김 전 원장이 부산저축은행의 비리와 부실을 파악하고 있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와 함께 김 전 원장이 2007년 7월부터 취임 직전인 2008년 3월까지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아시아신탁을 둘러싼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김 전 원장의 부인은 이 회사 주식 4억원어치(지분 4%)를 사들였다가 김 전 원장이 취임한 직후 이를 처분했다.

금융권에서는 이후에도 김 전 원장이 아시아신탁이 성장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선 아시아신탁은 2009년 이전에 설립된 9개 신탁회사 중에 유일하게 한 번도 금감원 검사를 받지 않았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김 전 원장이 비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영업 인가를 받는 과정에도 김 전 원장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당시 김 전 원장이 인가를 빨리 내달라며 독촉했으며, 그 과정에서 담당 팀장이 과로로 인해 뇌출혈로 숨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당시 김 전 원장이 (금감원) 부원장을 지낸 자신을 푸대접한다며 격노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시아신탁은 2006년 10월 창업해 이듬해 8월 정식 인가를 받기까지 10개월이 걸렸다.

아시아신탁의 성장 과정에도 의혹이 제기된다. 최초 자본금 3억원으로 출발한 아시아신탁은 창업 4년 반 만에 영업수익기준으로 업계 7위, 수탁고(16조8000억원) 기준으로 업계 4위로 성장했다. 부동산신탁업계가 2007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극히 이례적이다. A신탁업체 대표는 "김 전 원장의 후광 탓에 억울하게 사업장을 뺏긴 사례가 많다"고 주장했다. 본지는 김 전 원장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