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전자제품 전문 매장인 하이마트.

1층에 마련된 TV 판매장에는 결혼을 앞둔 20·30대 예비부부부터 이사를 준비하는 50대 중반의 주부까지 수십 명의 소비자가 다녀갔다. 이들이 선택한 TV는 3D(입체) TV였다. 이날 판매된 40인치 이상 대형 TV 24대 가운데 3D TV가 21대였다.

3D TV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전자제품 매장에서 입체 영상을 체험한 소비자들이 "집에서도 이런 방송을 보고 싶다"며 구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맹점이 있다. 3D를 방송하는 채널은 국내엔 위성방송용 채널인 '스카이 3D'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케이블TV에는 아예 3D 채널 자체가 없다. 인터넷TV(IPTV)의 경우 주문형비디오(VOD) 형태로 3D 프로그램을 제공하긴 하지만 볼 만한 것은 거의 없다. 지상파의 경우 3D 프로그램은 한 편도 송출하고 있지 않다.


3D TV 기술 논쟁은 뜨겁지만 정작 '무엇을 볼지'에는 무관심

하이마트 매장에서 팔리는 대형 TV(LED TV 기준) 가운데 3D TV의 판매 비중은 올 초 30%에서 이달 들어 45%까지 급등했다. 하이마트 대치점의 지기태 TV팀장은 "대형 TV 소비자들의 구매 분위기는 완전히 3D TV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TV의 경우 소비자들이 보통 10년 이상의 사용기간을 고려하기 때문에 신기술인 3D 기능을 소개하면 상당수가 선택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LG전자는 이런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우리 회사 기술이 세계 최고(最高)이자 대세'라며 열띤 기술 논쟁을 벌였다. 자사의 TV 제작기술(삼성전자는 셔터 안경식(active), LG전자는 편광 안경식(passive)이 3D 영상을 보는 데 적합하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3D TV를 사 가고 있어도 앞으로 한동안은 볼 만한 3D 방송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애써 알리지 않고 있다. 국내 유일한 3D 채널인 '스카이 3D'의 경우 보유한 3D 영상물이 80~90시간에 불과하다.

3D 채널 설립을 검토했던 한 업체 사장은 "제대로 된 채널을 만들려면 연간 800~1000시간 정도가 필요하다"며 "채널 하나 세울 만한 3D 프로그램이 아직 시장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상파의 3D 프로그램 제작 및 송출도 걸음마 단계다. 작년에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일부 주파수를 임대받아 5월과 11월 대구 프레 세계육상선수권대회, G20 정상회담 등 두 차례 실험방송을 했을 뿐이다.

"3D 방송시대는 일러야 2014년쯤 올 것"

케이블TV업계 관계자는 "3D TV는 지금 살 수 있지만 3D 방송시대는 아직은 먼 미래"라고 말했다.

3D 프로그램은 일반 프로그램보다 제작할 때 비용이 3~4배 이상 든다. 또 방송사에서 각 가정까지 3D 프로그램을 보내려면 기존 프로그램보다 주파수나 케이블 대역폭 등이 두 배나 필요하다.

국내 최초 3D 채널인 스카이 3D 문성길 대표조차 "2014~2015년쯤 돼야 3D 방송이 보편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카이 3D' 채널은 개척자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과거 고화질(HD) 채널의 보급 때와 비슷하다. 첫 HD 전용 채널 '스카이HD'는 2003년 등장했지만 소비자들이 손쉽게 HD 방송을 즐기게 된 것은 6년쯤 지난 2009년쯤이었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사의 TV 고객들이 TV를 인터넷에 연결해 3D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3D 콘텐츠도 30편에 불과하다. LG전자는 삼성과 같은 서비스를 '3D 존(현재 60편의 콘텐츠 보유)'이란 이름으로 제공하고 있다. 마케팅만 있고 콘텐츠 없는 3D TV가 아직은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