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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실린더의 주요부품인 피스톤링을 생산하는 충남 소재 유성기업이 직장을 폐쇄하고, 노조가 점거 농성을 벌이면서 생산이 전면 중단되자, 국내 완성차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한 개당 1000원 정도 하는 피스톤링은 엔진의 폭발 공정에서 압력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밀봉하고 피스톤과 실린더 벽 사이의 마찰을 줄여주는 부품이다.

가장 큰 피해는 국내 시장점유율 1위에 글로벌 시장에서도 급속히 판매량을 늘리고 있는 현대·기아차다. 현대·기아차는 피스톤링의 70%를 유성기업에서 공급받는다. 따라서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주요 차종 생산 중단이 불가피한 처지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4월 국내에서 29만대를 생산했으나, 유성기업 파업사태가 내달까지 계속될 경우, 6월에만 20만~30만대의 생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피스톤링을 생산하는 대한이연 등 다른 부품업체가 일부 있긴 하지만 그쪽도 추가 공급 여력이 전혀 없다"며 "해외에서 조달하려고 해도 최소 3~4개월 이상이 걸려 유성기업이 정상화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유성기업의 파업이 국내 완성차 업체의 생산 중단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완성차 업체의 생산라인이 가동을 멈추면 그곳에 납품하는 3000여개 협력사들도 연쇄적으로 가동 중단에 들어가고, 연매출 81조에 달하는 자동차산업의 근로자 30여만명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3000여개사중 우량 부품 업체는 77개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대부분 중소 기업이어서,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의 생산 라인이 중단되면 극심한 경영난이 우려된다.

한개 자동차 부품업체의 파업 여파가 이처럼 큰 것은 유성기업이 피스톤링과 실린더라이너, 캠샤프트 등 일부 엔진부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1959년에 창업, 충남 아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유성기업의 피스톤링 국내 시장 점유율은 80%에 달한다. 현대·기아차는 유성기업에 70%를, 한국GM은 70%, 르노삼성은 SM5 2.0 모델에 쓰이는 캠샤프트 전량을 유성기업에서 공급받고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피스톤링을 그룹 내 수직계열 기업으로 두지 않고 협력업체로 둔 것은 개당 부품 가격이 너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뛰어들어봐야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성기업은 이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해 다른 중소 부품업체들의 진입도 쉽게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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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런 기술력 때문에 유성기업은 미국 크라이슬러 등 전 세계 40여개국에 피스톤링 등을 수출하고 있다. 또 중국에 한·중·일 합작회사를 설립, 베이징현대자동차와 동풍기아차에 피스톤링을 공급하고 있다.

유성기업의 하루 매출은 약 5억원 정도. 그러나 생산중단에 따른 피해는 매출액뿐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차 등 대부분의 국내 완성차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유성기업은 계약 불이행(납품 중단)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완성차 업체에 지불할 수도 있다. 회사 관계자는 "납품이 완전히 끊어질 경우 약정대로라면 손해배상액이 1시간에 무려 18억원"이라고 밝혔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고속질주하던 현대·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 산업이 1개 1000~2000원 하는 작은 엔진부품 제조회사의 파업 때문에 급제동이 걸린 데 대해 완성차 업체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는 일본 대지진의 피해를 입지 않은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지난 3~5월 큰 폭의 판매 증가율을 보이며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왔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650만~700만대를 생산, 세계 3위의 자동차 업체로 도약한다는 현대·기아차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기아차는 지금까지 유성기업으로부터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의 피스톤링을 공급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성기업의 파업으로 인해 서플라이체인(부품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자칫 모든 자동차 생산 라인을 세워야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빨리 노사협상이 재개돼 조업이 재개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