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화로 표시된 RMB 펀드(Renminbi·인민폐, 중국 위안화로 중국 본토 기업에 투자해 중국 증시 상장을 목표로 하는 펀드)가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13일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외신은 골드만삭스에 이어 모건스탠리 등이 앞다퉈 중국 위안화로 표시된 펀드를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블랙스톤·칼라일 등 세계 최대 사모펀드들도 RMB 펀드를 내놓고 본격적으로 중국 투자에 나섰다.

중국 정부가 해외 자금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 자본시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RMB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 해외 자금 통제‥편법 해외 증시 상장 늘어

2006년 이전 중국의 벤처캐피탈과 사모펀드(PEF)는 해외 자금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해외 자금에 대해 통제를 했기 때문에 달러 기금이 중국 기업에 투자해 중국 증시에 상장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해외 기금이 인터넷·미디어 등 이른바 ‘TMT(Technology·Media·Telecom)’ 분야에는 투자하지 못하도록 했다. 당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인터넷 기업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해외 벤처캐피탈들은 TMT 분야의 기업에 투자한 뒤 홍콩·케이만 등 역외에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를 설립해 이곳을 통해 해외에 상장하는 식의 편법을 썼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의 포털업체 ‘시나(sina.com)’, ‘바이두(Baidu)’ 같은 기업들이다. 이때부터 이같은 방식은 ‘시나스트럭쳐(Sina Structure)’라고 불렸다.

이처럼 해외 기금이 중국 기업에 투자해 해외 증시에 상장시키는 사례가 늘면서 중국 정부도 중국 본토 자본과 중국 기업을 키워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 법인·유통주식 구분 등으로 중국 벤처캐피탈 더디게 성숙

이는 중국의 자본시장이 2000년 초반까지 더디게 발전한 탓도 있다. RMB 펀드는 중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벤처캐피탈이 일반 기업을 중국 증시에 상장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

2006년 이전 중국 주식은 법인주식과 유통주식,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었다. 법인주식은 벤처캐피탈이 가지고 있는 투자기업의 지분을 말하고, 유통주식은 상장 이후에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을 뜻한다. 하지만 벤처캐피탈이 가지고 있는 법인주식 가치가 유통주식에 비해 절반도 안됐다. 예펑(葉鋒) 아펙스캐피탈글로벌 대표는 “유통주식이 한 주당 2달러라면 법인 주식은 1달러도 안됐었다”며 “벤처캐피탈은 투자한 기업을 증시에 상장한 후 지분을 팔아 수익을 거두는데 당시만 해도 투자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예펑 아펙스캐피탈글로벌 대표

예 대표는 “중국 증권감독위원회가 지역별로 쿼터제를 두고 상장할 수 있는 기업 수를 제한하기도 했다”며 “당시에는 국영기업을 증시에 우선 상장했기 때문에 민영 기업들이 상장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그러다 2006년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법인주식도 유통할 수 있게 됐다. 쿼터제도 완화되면서 중국 증시 상장이 늘어나기 시작하다 2009년 10월 차스닥이 문을 열면서 중국 본토 벤처캐피탈도 큰 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 QFLP 도입 등 해외자금 유치에도 RMB 펀드 급증

이처럼 제도와 시장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RMB 펀드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기금들이 중국 지방정부와 손을 잡고 RMB 펀드를 조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국 리서치 업체 제로투IPO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조성된 RMB 펀드는 146개로, 전체 펀드의 92.4%를 차지했다. 2009년 89.4%를 차지했던 데서 더 늘어났다.

성도지역 모태펀드인 인커캐피탈(Yinke Venture Capital) 우종(吳忠) 대표는 “RMB 펀드가 최근 들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해외 기금이 중국에 들어오는 데 장벽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RMB 펀드가 새로운 투자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종 인커 벤처캐피탈(Yinke Venture Capital) 대표

그렇다고 중국 정부가 해외펀드를 몰아세우는 것만은 아니다. 올해 1월 상해정부는 해외펀드를 대상으로 ‘적격 외국 유한파트너(QFLP·Qualified Foreign Limited Partnership)’제도를 시범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이 자격을 갖춘 외국계 금융기관에 한해 중국 이외 지역에서 조달한 자금을 위안화로 바꿔 중국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자격을 갖춘 해외펀드는 중국 본토 펀드, 즉 RMB 펀드와 똑같이 대우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칼라일과 블랙스톤이 QFLP의 시범기업으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은 위안화 환전이 쉬워지고, 세금혜택을 받을 수도 있게 된다. 해외 자본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나선 셈이다.

그럼에도 RMB 펀드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 세콰이어 캐피탈의 션난펑(沈南?) 대표는 지난해 12월8일 열린 중국 벤처캐피탈 컨퍼런스에서 “3년 내에 RMB 기금이 전체의 80%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