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 계열 5개 저축은행이 박연호(구속수감중)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들에게 5조원에 이르는 불법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해주는 등 대주주가 저축은행을 사(私)금고 삼아 제멋대로 거액을 빼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한 고위 간부는 "6조원대에 이르는 전체 PF대출의 최소 80%가 대주주들이 직접 벌이는 사업에 투입됐다"며 "금융회사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라고 말했다.

부산저축은행은 임직원 친척들의 명의를 빌린 시행사를 만들어 정상적인 대출이 이뤄지는 것처럼 꾸미고, 명의 대여자에게 입막음을 위한 대가(월 100만~200만원)를 지불하며 금감원의 감시를 피했다. 하지만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에게 채무가 없다며 써준 확인서가 검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부산저축은행이 이런 불법을 일삼은 이유는 저축은행이 한 기업에 대해 자기 자본의 20%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다는 금감원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주주들이 전횡을 저지르는 사이 부산저축은행은 부채를 뺀 순자산이 마이너스 1조6800억원으로 심각한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보해저축은행(전남 목포 소재)도 '불법 백화점'이었다. 전체 1조800억원의 여신 중 불법대출이 6000억원대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기 연체가 발생했는데도 분식회계를 통해 정상적으로 회수되는 것처럼 꾸민 신용대출만 3000억원에 달했다. 빌린 명의자와 실제 대출받은 사람이 서로 달라 회수 불능 상태에 빠진 대출도 많았다. 이 밖에 대출금을 회수하기도 전에 임직원이 제멋대로 담보를 해지해주는 바람에 쌓아야 하는 대손충당금이 1400억원에 달했다.

부산저축은행과 보해저축은행은 작년 3분기만 하더라도 부실을 숨기고 BIS비율을 각각 7.16%와 마이너스 2.83%로 공시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남은 자산을 실사해 다시 계산해보니 BIS 비율이 마이너스 50.29%와 마이너스 91.35%로 큰 차이를 보였다. 강원도의 도민저축은행도 순자산이 마이너스 135억원, BIS비율은 마이너스 5.52%였다.

문제는 이런 심각한 불법 행위가 금감원의 정기 검사를 받을 때는 전혀 발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감원의 관리·감독 능력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장호 금감원 부원장보는 "금감원이 압수수색과 같은 수사 기능이 없어 검사를 나가도 관련자들이 입을 맞추면 적발해내기 어렵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