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초당두부 회사를 29년째 운영하는 최선윤 회장은 요즘 매출이 늘지 않아 고민이다. 최 회장은 "일본은 두부를 우리보다 몇 배 더 많이 먹지만, 대기업이 두부산업에 진출하지 않는다"며 "대기업이 대규모 자금을 바탕으로 대형마트에서 판촉활동을 하니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두부산업에 대기업이 진출한 것은 4년이 채 안 된다. 두부산업은 1983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된 뒤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으로 보호받다 2006년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되면서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CJ, 대상 등 대기업은 2007년과 2008년 차례로 두부시장에 참여한 지 3년 만에 포장 두부 시장의 84.2%를 차지했다. 이 사이 중소 두부업체는 2006년 188개에서 2009년에는 66개로 급감했다.

중기 적합업종 가이드라인 눈앞

동반성장위원회가 5년 만에 중소기업을 보호·지원하기 위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하겠다고 나서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진영 간 날 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이대로 두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며 사회 혼란으로 이어진다"는 문제인식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더해 중소기업 진영은 두부·고추장·된장과 같은 식품류는 물론이고 금형·주조·골판지·재생타이어·데스크톱 PC 같은 산업분야 등에 대한 대기업 진입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골판지조합 김진무 전무는 "대기업이 까치밥까지 다 뺏으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경제단체는 "획일적인 선정기준은 시장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29일 '중소기업 적합업종 가이드라인'을 확정한다. 이어 8~9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정한다.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는데, 이를 어기고 그 업종에서 대기업이 영업을 하면 해당 기업은 동반성장 점수가 깎인다. '공개적으로 부도덕한 기업이라 망신을 주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논의 과정에서 첨예한 이해관계

논란의 핵심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가려내기 위한 심사 기준이다. 당초 동반성장위는 지난 22일 공청회에서 "시장규모 1000억~1조5000억원 사이의 품목을 중소기업 적합 종목으로 하자"고 제안했으나 28일 이를 백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준대로라면 디지털카메라·엘리베이터·에어컨·김치냉장고 같은 품목도 중소기업 업종에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전경련 등 경제단체는 "시장규모 1조5000억원 이상인 품목은 전체 제조업 품목 1909개의 7.6%(146개)에 불과하다"며 "대기업에 대한 너무 포괄적인 규제"라고 반발해 왔다.

소비자 이익을 중소기업 적합업종 심사과정에서 얼마나 고려할 것인지도 대표적인 쟁점이다. 대기업 진영은 "대기업이 진출해서 소비자가 더 만족하는데 이를 규제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CJ 신동휘 부사장은 "국민안전과 직결되는 식품업계에서는 대기업이 들어가서 안전 분야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진출한 분야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 협력업체에 돌아갈 피해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만약 의류산업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하면, 대기업에 OEM(주문자생산방식)으로 납품하는 협력업체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 제일모직의 경우 300여개 협력사에 생산을 위탁하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대한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그럼에도 이번 기회에 대기업의 중소기업영역 진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학림 IBK경제연구소장은 "막걸리, 한방샴푸 같은 중소기업이 어렵게 개척한 시장마저 대기업들이 무차별로 먹어치우는 것이 현실"이라며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무조건 비판하기보다는 근본 취지를 살려 '운영의 묘'를 발휘해 나가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