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최근 '미니홈피'로 유명한 인터넷사이트 '싸이월드' 회원에서 탈퇴했다. 컴퓨터를 이용해 서비스 해지신청을 하자 '회원님의 모든 정보는 삭제되며 복구 불가능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떴다.

그런데 A씨가 1주일 뒤 스마트폰에서 우연히 싸이월드 응용프로그램(앱)을 눌러보자 자신의 미니홈피로 자동 연결됐다. 지워진 줄 알았던 자신의 아이디와 그동안 올린 글, 친구들과 찍은 사진 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A씨가 "이미 탈퇴한 회원들의 개인정보와 자료를 왜 보관하느냐"고 항의하자 싸이월드 측은 "모바일 서비스에서 실수로 탈퇴처리가 안 된 것 같다"고 사과한 뒤 뒤늦게 A씨의 자료를 삭제해줬다.

인터넷 사이트들의 개인정보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탈퇴한 회원의 정보를 계속 보유하는가 하면 회원정보를 통째로 도둑맞는 경우도 발생해 이용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싸이월드 탈퇴해도 내 정보는 그대로"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는 "2000만명의 회원 자료가 워낙 방대해 탈퇴회원의 자료를 따로 지우려면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 회원탈퇴 후에도 "향후 발생할지 모르는 분쟁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일정기간 동안 보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름·아이디·주민번호 등은 1년간, 사이버머니(도토리)를 이용해 물품을 구매한 내역은 최장 5년간 보관한다.

한 이용자는 "미니홈피는 소소한 일상생활을 모두 기록해 둔 일기장이나 마찬가지인데, 서비스를 탈퇴해도 회사가 내 일기장이나 개인정보를 계속 갖고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회원탈퇴 자체를 어렵게 해둔 사이트도 많다. 올 초 만화사이트에 무료회원으로 가입한 조진호(45)씨는 "서비스가 별로여서 탈퇴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회원탈퇴 메뉴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조씨는 "내 정보를 텔레마케팅 회사들에 팔아먹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래픽= 신용선 기자 ysshin@chosun.com

제휴업체에 마구잡이로 개인정보 넘겨

개인정보를 빼돌려 보이스피싱(전화 사기) 같은 금융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다른 사람의 휴대폰 번호나 이메일 아이디로 성인·도박사이트를 광고하는 스팸메일과 문자메시지를 무차별적으로 뿌려대기도 한다.

대학생 장모(20)씨는 지난달 친구의 메신저 아이디로 "곧 갚을 테니 20만원만 송금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수상한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전화해보니 그 친구는 인터넷에 접속해 있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친구의 아이디를 훔쳐 사기를 치고 다니는 것이었다.

인터넷 회사들이 제휴업체에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마구 제공하는 것도 문제다. 회사원 김정훈(34)씨는 한 자동차 사이트의 이벤트에 응모했다가 며칠 뒤 자동차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았다. 이 사이트가 보험회사에 응모자들의 연락처를 넘겼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걸려오는 대출안내 전화도 이런 식으로 개인정보가 흘러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는 "내 개인정보를 제삼자에게 제휴하는 데 동의합니다"라는 항목에 체크하지 않으면 회원가입 자체를 받아주지 않는다. 개인정보를 제휴업체에 유료로 팔아먹기 위해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런 점을 고려해 7월부터는 불필요한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아도 회원가입이 되도록 관련 법을 개정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에 따르면 개인정보 침해 신고건수는 2004년 1만7569건에서 지난해 5만4832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황철증 방통위 네트워크정책국장은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어 개인정보 보호실태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