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리 국민이 먹은 라면은 약 32억개다. 단순히 평균만 계산하면 국민 1인당 64개를 먹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만큼 중요한 서민 음식이다. 이 중 70%를 팔고 있는 농심의 고위층들은 요즘 정부 눈치 보느라 정신이 없다. 주원료인 밀가루값을 비롯해 원재료값은 계속 올라가는데 라면 가격은 못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공식적으로는 "가격 인상을 검토한 적 없다"고 했지만, 이를 믿기 힘들다. 증권가에서는 농심의 1분기 매출은 작년 1분기보다 6% 정도 올랐는데, 영업이익은 4.5% 이상 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Y중국집 주인은 "밀가루값이 올라 미치는 중"이라고 말했다. 돼지고기와 채소 가격 인상을 감당하지 못해 지난 2월 이미 자장면과 짬뽕 값을 4000원에서 4500원으로 한 차례 올렸다. 이 때문에 매출이 20% 줄었다. 그는 "더 올리면 손님이 줄고 안 올리면 손해 보고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종로3가의 H칼국수도 올 초 가격을 4000원에서 4500원으로 3년 만에 올렸다가 지금 난감한 상황이 됐다. 주인은 "당시엔 배추 가격이 올라서 값을 올렸다"며 "밀가루값이 올랐다고 3개월 만에 또 올릴 수 있는 거냐"며 반문했다.

분식점 체인인 S사는 지난 1일을 기점으로 떡볶이 가격을 8000원에서 9000원으로 올리는 등 값을 평균 7%씩 인상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5년 동안 안 올리고 버텼는데 이젠 손해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더군다나 밀가루가 오른다는 보도가 나오기에 인상했다"고 말했다. S업체는 "라면도 오를 가능성이 있어서 아예 라면을 우리가 뽑아 쓰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용선 기사 syshin@chosun.con

올 들어 심각해진 물가 비상사태가 상대적으로 덜 올랐던 가공식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밀과 원당(原糖) 같은 국제 식품 원료가격이 오르자 이를 감당하지 못한 설탕·밀가루 등 기초식품 업체들이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제과·제빵 업체는 물론 서민적인 식당까지 다시 가격 상승 압력을 받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

밀가루 등 기초식품 올라

해태제과는 5일 주요 과자의 주요 유통업체 공급가격을 평균 8% 올린다고 발표했다. 편의점의 경우 오예스(12개)는 3600원에서 4200원으로 올랐다. 롯데제과오리온도 가격 인상의 시기와 폭을 검토하고 있다.

외식업체들도 마찬가지다. 한국맥도날드는 최근 점심 메뉴를 최대 300원씩 올렸다. 던킨도너츠는 지난 1일부터 새 플레인 베이글 빵을 내놨는데 가격이 전보다 100원 오른 1600원이었다.

이는 설탕과 밀가루 값 인상의 결과다. 설탕 업체들은 지난달 중순쯤 가격을 9% 올렸다.

지난 1일에는 밀가루 업체인 동아원이 밀가루값을 8.6% 올렸고 CJ제일제당대한제분도 곧 따라 올릴 가능성이 크다. CJ제일제당은 1일자로 콩기름과 튀김용 식용유의 가격을 평균 8.5% 올렸다. 식품 업계에서는 빵의 경우 밀가루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2%이고, 제과는 10%, 라면은 18~20% 정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설탕·밀가루 가격 인상의 배경은 국제 식품 원료 가격의 상승이다. 3월 국제 밀가격은 작년 3월에 비해 55% 올랐다. 설탕의 원료인 국제 원당 가격은 83% 올랐다.

덜 올랐던 가공식품 인상

이 같은 가공식품의 인상은 물가 문제가 지금까지와 다른 양상으로 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올 초부터 지금까지 소비자 물가가 오른 이유는 주로 고기·생선·채소가 문제였다.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돼지고기가 작년 3월에 비해 32%, 고등어가 33% 올랐었다. 그러나 밀가루는 1%, 설탕은 17% 올랐었다. 상대적으로 덜 올랐던 것이다. 이에 따라, 라면은 1% 하락했고, 국수는 3%만 오르는 것이 가능했었다. 이와 반대로 앞으로는 가공 식품이 물가를 밀어올리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